북미정상회담: '진짜 화해'를 이뤄낼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북미정상회담 개최지와 일정이 곧 발표된다. 지난 반 세기 동안 끊임없이 눈치 싸움을 벌여 온 양국이 이번엔 '진짜 화해'를 이뤄낼 수 있을까.

김일성의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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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김일성 주석이 미국 측 인사들을 초청했다는 내용의 CIA 기밀 문서가 작성된 지 20여년 뒤 공개됐다

"11월 15일 저녁 식사 자리였다. 시아누크 공이 참석자들에게 '내가 닉슨 전 대통령과 키신저 전 장관 등에게 방북을 요청하는 김일성 주석의 초대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닉슨과 키신저로부터는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1984년 11월 작성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기밀 문서에 담겨 있던 내용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 공은 북한 김일성 주석을 대신해 미국 측 인사들에게 방북을 제안했다.

미국과 북한의 상황은 복잡했다. 아흐레 전인 11월 6일 미국에선 40대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강력한 반 공산주의 사상을 내세웠던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재집권했다. 그보다 앞선 그해 4월, 북한은 첫 번째 미사일 발사 실험을 진행한 상황이었다.

리차드 닉슨 전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북한의 요청을 돌려 거절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네바 합의

10년 뒤인 1994년 가을, 양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마주앉았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북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은 상태였다. 당시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까지 검토하고 있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흣날 자서전 '나의 삶(My Life)'에서 "전쟁 위험이 있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겠다는 결심이었다"고 회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양국은 전쟁 대신 협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은 핵을 동결하고, 그 대가로 미국은 경수로와 석유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엔 북한 대표인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과 미국 대표 로버트 갈루치 대사가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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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94년 6월 15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으로 넘어가기 전 판문점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같은 합의가 이뤄진 데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공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평양을 찾아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에서 상당히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산된 정상회담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며 북미관계는 해빙 분위기를 이어갔다.

2000년 10월엔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양국은 '무력을 쓰지 않고 상호 적대 정책을 배제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 직후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이뤄졌다.

이미지 캡션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이뤄졌다

이처럼 고위급 접촉이 오가자 일각에선 양국 정상의 회담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수교까지 맺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그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는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클린턴 행정부의 온건 대북 정책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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