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핵실험장'이 되기 전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길주군 길주읍 근처 과수원. 풍계리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다 Image copyright 평화문제연구소
이미지 캡션 길주군 길주읍 근처 과수원. 풍계리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다

"남대천 물이 흘렀는데 상류기 때문에 물이 정말 깨끗했다. 산천어를 잡아 어죽을 쑤어 오빠들과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풍계리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인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모(57) 씨는 최근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풍계리를 이같이 회상했다.

"풍계리에는 송이버섯이 정말 많이 나서 송이 따러 자주 갔고, 진달래도 따러 갔다"며 "옛날에 참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2015년에 탈북한 김 모씨는 50여 년 간 살았던 길주군과 자주 갔던 풍계리(길주군에서 20여 킬로미터)의 모습이 생생하다.

풍계리 하면 대부분 '핵실험장'을 떠올리지만, 다른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씨와 같이 풍계리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한국에 '풍계리' 출신 탈북자는 많지 않지만, 풍계리가 위치한 길주군 출신 탈북자는 130여 명으로 추정된다. BBC 코리아는 길주군 출신 탈북자들을 만나 그들이 기억하는 길주와 풍계리의 풍경을 들어봤다.

그들의 부모, 형제, 자매는 길주에 남아 핵실험장이 있는 풍계리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며 살고 있다. 한국에 온 후 핵실험장의 피폭 위험에 대해 알게 됬지만, 그들의 가족은 지금 이 순간에도 피폭에 대해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풍요로운 땅에 맑은 계곡이 흐르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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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구글 어스(Google Earth)로 본 길주읍. 이 곳 출신 한 탈북자는 구글 어스를 통해 자신이 살던 집과 형제들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본다고 했다.

'풍계리'는 풍요로운 땅에 맑은 계곡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남대천과 장흥천이 흐르며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산이 깊고 울창해 예전에는 호랑이가 많았고 호랑이 관련 피해 기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과 암반이 화강암으로 이뤄졌다는 이유로 북한은 이곳에 핵실험장을 지었고,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09년과 2013년, 2016년과 지난해 9월 등 총 6차례 핵실험이 이뤄졌다.

김 씨는 "진달래가 말도 못 하게 많았다"며 "다 같이 가서 진달래를 따면 그 꽃으로 꽃바구니를 만들어 김일성에게 바쳐졌다"고 말했다.

김 씨가 살던 길주읍 '길주청년역'에서 풍계리 '재덕역'까지 거리는 기차 세 정거장이었다. 20~30분이면 풍계리에 갈 수 있었다. 길주는 예로부터 철도 교통의 요지로 철도와 도로가 북한 여기저기로 뻗어 나간다.

산천이 아름다워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군부대가 들어오기 시작해 진달래를 꺾으러 가지 않고 이후 송이버섯도 나지 않기 시작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79년 가을부터인가 림산사업소를 철거하고 (벌목노동자)를 철수시켰다"며 "아스콤(비밀 군사 기지)인 줄 알았지 핵 실험장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철로 옆에 쌓여 있던 새하얀 화강암"

이미지 캡션 풍계리 재덕역, 그의 고향 집, 길주제1중학교에 위치한 김일성 동상(맨 위에서 시계방향)

길주읍에서 50여 년을 산 최 모 씨(60) 역시 풍계리의 아름다운 자연을 기억했다. 소나무가 많아서 깊고 울창한 "솔숲"이었다고 했다.

특별히 기억나는 걸 묻자 그는 집집마다 양을 키우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양을 끌고 가서 말뚝에 묶어 놓고 '비단뻘'에서 놀았던 때를 떠올렸다.

"남대천 옆에 비단뻘이라고 불리던 곳이 있었다. 길주펄프공장이 있어서 남대천 유역에 황철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래서 비단뻘이라고 했다."

최 씨도 마찬가지로 송이를 땄고 도토리도 주웠다. "봄, 여름에는 산 위에서부터 송이버섯이 나서 따러 가고, 송이 철이 끝나면 참나무가 울창했기 때문에 도토리 주우러 얼마나 다녔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쌀장사를 했던 최 씨는 "길주군은 (북한에서) 곡식 값이 제일 쌌던 곳이다. 생산이 많았기 때문이다"라며 "길주 콩은 평양, 해산, 청진 안가는 데가 없었다"고 말했다.

핵실험장 건설을 위해 풍계리의 모습이 바뀌던 때를 최 씨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 철로 옆에 집채만한 새하얀 돌덩이들이 쭉 쌓아져 있었다. 재덕 역에도 산처럼 쌓아져 있었다. 당시 '어디서 저렇게 많은 돌들이 왔나'하며 보던 기억이 있다"며 "그 후 기차를 편성해서 돌을 다른 곳으로 실어 나르더라. 80년대, 90년대 그리고 (한국에) 올 때까지 그랬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핵실험장 갱도를 뚫으며 나온 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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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38노스가 배포하는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사진. 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하는 풍계리의 모습이다

승냥이와 호랑이가 없어졌다

길주읍 출신 이정화(45) 씨는 풍계리를 한국의 강원도 같다고 묘사했다. "붕화문이란 곳을 지나면 신동이란 곳이 나오고 거기부터 산이다"며 "산이 있고 평지에 민가가 있고 굽이굽이 자동차 길이 나 있다"고 말했다.

산이 험준해 짐승도 많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호기심에 승냥이 뒤를 쫓아가다 오빠한테 혼났던 기억, 할머니가 호랑이를 봤다고 말씀해 주시던 기억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산 속 호랑이가 길주 내 민가로 내려와 피해를 본 사례도 종종 보도됐다. 1927년 8월 29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산 속에는 수림이 빽빽하야 큰 호랑이가 다니며 틈틈히 인촌에 내려와서는 개 도야지 등을 벌서 십여마리나 물어가서 가축에 큰 피해가 있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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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동아일보 1927년 8월 29일에 실린 길주 호랑이 피해 사례

이 씨는 1940~50년대에도 호랑이 봤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80년대 이후에는 (벌목으로 인해) 산이 심하게 발가벗겨졌다. 그러니까 짐승들도 없어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지금의 길주는 상상하기 싫지만 옛날의 길주는 좋았던 추억이 있다. 부모 슬하에 있었고 아이였으니까"라고 했다.

집 앞 군문화회관에서 명절, 기념일 등에는 모였던 기억도 바로 어제 일 같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직생활이었지만, 다 같이 춤추고 노래하고 흥겹게 놀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가 군문화회관 앞이었다."

"우린 풍계리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는다"

한편 김 씨는 지난 12일 아직 길주군에 살고 있는 30세의 아들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아들이) 많이 아팠었다"며 "피폭으로 인한 거 같다"며 괴로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길주 출신 탈북자 몇몇은 김 씨 집에 모여 김 씨를 위로했다. 그들은 BBC 코리아에 김 씨 아들 외에도 최근 길주군에서는 30대 청년 5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꽃 따러 고기 잡으러 가던 고향 집 근처에서 6차례 넘게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과 피폭 가능성을 알게 됐을 때 이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이것들이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다. 근처가 다 주민 가옥이고 우리 길주 사람들이 거기서 내려오는 물을 먹고 그 공기를 같이 마시고 있는데 거기서 핵실험을 그렇게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이정화 씨는 말했다.

김 씨와 이정화 씨는 2013년 3차 핵실험 후 알게 됐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에 온 후 알게 됐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사람들이 사는 곳 근처에 핵실험장 만드냐"고 이 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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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풍계리 인근 인공지진을 설명하고 있는 기상청

길주군 출신 탈북자 대부분은 한국에 오기 전엔 피폭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했다.

1차 핵실험 때 북한 내에서 보도를 보고 고향에 핵실험장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최 씨는 "당시 길주군에서 중요한 거 했구나하며 사람들은 좋아했다"며 "우리나라가 강하게 되는 거고 건강에 나쁜 건 생각 못 했다"고 회상했다.

길주군 출신 탈북자의 피폭 사례를 연구한 최경희 박사에 따르면 길주군 출신 탈북자들은 핵실험을 할 때 한 번도 지역 주민을 대피시킨 적이 없다.

길주군은 풍계리 만탑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한데 모이는 바가지 모양의 지형이기 때문에 길주군 사람들은 다 풍계리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는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문화일보에 "전 세계적으로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 근처에 핵실험장을 건설한 곳은 북한밖에 없기 때문에 방사능 피폭으로 식수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길주의 지하수 오염 검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경희 박사가 2016년 길주 출신 탈북자 21명을 심층 면담해 조사한 결과 조사자 대부분이 원인 모를 백혈구 감소증, 뼈와 관절의 고통, 두통 등을 호소했다. 이는 북한 당국과 통일부의 길주 출신 탈북자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라는 입장과 다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발이 예정된 가운데 탈북자 최 씨는 늘 위성사진으로 등장하는 풍계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구글 지도로 동생 집, 언니 집을 찾아본다. 내가 살던 집 지붕도 그대로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형제들은 그 땅이 오염된 것도 모르고 산다. 지금이라도 없앤다니까 다행이긴 하지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씨는 핵실험장 폭발도 비판했다. "길주는 이미 버린 카드다. 그러니까 6차까지 한 거다"며 "이미 다 써 버린 카드를 버리겠다는 건데 왜 그렇게 난리냐"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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