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군 유해 송환 임박... 과거 사례는?

1993년 12월 판문점에서 이뤄진 한국전쟁 참전 용사 송환 행사. 현재 나무로 된 임시 운송케이스 100여 개가 판문점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Image copyright CHOO YOUN-KONG
이미지 캡션 1993년 12월 판문점에서 이뤄진 한국전쟁 참전 용사 송환 행사. 현재 나무로 된 임시 운송케이스 100여 개가 판문점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 절차가 곧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전쟁 참전 미군 유해의 발굴 및 송환이 그동안 어떻게 이뤄졌는지 주목된다.

이번 송환 절차에 대해 잘 알려진 게 없는 가운데, 이전의 사례가 힌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휴전 직후인 1954년 8월 유엔군 전사자 4천23구의 유해를 돌려줬지만 이후 송환을 중단했다가 이를 1990년부터 재개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07년까지 최소 400여 구의 유해가 미국으로 송환됐다.

DPAA는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관료들은 (미군) 유해 200여 구를 발굴해 보관하고 있다고 몇 차례 전한 바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공동합의문에 따라 1990년대 초 형식으로 반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1990년, 유해 5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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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93년 11월 30일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유엔군에 미국군 유해를 전달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목적으로 판문점을 통해 미군 유해 5구를 처음 송환했다. 이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이 단독으로 발굴한 미군 유해가 208개의 관에 담겨 송환됐다.

DPAA는 웹사이트에 "208개의 관 안의 유해는 섞여 있었다"며 "이 관에 담겨온 유해들을 400여 명의 미군 병사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1996년 7월부터 2005년 5월까지는 북한 지역에서 북미 공동 유해발굴 작업이 33차례 진행됐고, 220구의 미군 유해가 수습돼 미국으로 보내졌다. 일부는 아직도 신원확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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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AA는 공동 유해발굴 작업이 2005년 "보안상 우려로 일시 정지됐다"고 설명했다.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는 2007년 4월 한 번 더 송환됐다. 빌 리처드슨 당시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가 6구의 미군 유해를 판문점을 거쳐 미국으로 인도했다.

지금까지는 수십 개의 유해가 한 번에 송환되는 형식이었고, 그래서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관에 담긴 유해를 운구하면 유엔사가 한 구씩 인수하는 행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0개가 넘는 관이 송환될 것으로 보여 송환 방식이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00여 개의 나무로 된 임시 운송 케이스가 판문점에, 158개의 금속관이 오산 미 공군기지에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 뼈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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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51년 5월 한국전쟁 참전 미군

DPAA의 한국전쟁 참전 미군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 실종된 미군 병사는 7천 6백여 명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중 약 4천 100명이 북한 지역에서 전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DPAA는 미군 병사 유해가 평안북도 운산군, 청천강 부근과 북한 함경남도 흥남의 조신저수지에 가장 많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평안북도 운산에서는 중공군과의 전투가 치열했고, 1950년도 겨울 있었던 '조신저수지' 전투도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알려진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송환되는 유해 200여 구는 평안북도 운산 전투와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미 해병1사단 및 제1기병사단 소속 전사자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신원 확인 작업은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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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2년 알린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미군.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이 미군의 유해는 1950년에 발굴되어 송환됐지만, 2011년에야 신원이 확인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 기사에서 북한이 병사를 송환할 때 주의해야 한다며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달 펴낸 '태영호의 증언-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소개한 영국군 송환 사례를 언급했다.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이 2004년 영국군 비행사 데스몬트 프레드릭 윌리엄 힌톤의 유해를 송환했을 때 DNA 검사 결과 동물 뼈로 밝혀졌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속으로 화를 품은 채 영국 측의 항의를 판문점대표부에 전달했다"며 북한의 반응은 당당했다고 했다. 북한은 "DNA 검사 장비가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며 "비행기가 격추된 장소 주변을 파서 유골을 넘겨주었으니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본인이 아니면 어쩔 수 없다. 유골 발굴을 하다 보면 짐승 뼈도 더러 나온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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