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예멘: 예멘인 난민신청자들의 현실

제주 시내 한 관광호텔에는 현재 20여 명의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머물고 있다
이미지 캡션 제주 시내 한 관광호텔에는 현재 20여 명의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머물고 있다

지난 21일 제주시의 한 관광호텔 앞에 4명의 남성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5월 제주에 들어온 예멘 출신의 난민신청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호텔에만 약 150명에 달하는 예멘인이 머물렀다. 그러다 최근 제주시가 이들 난민신청자에게 이례적으로 취업을 허용했고, 또 일부 일손이 부족한 업종에 일자리를 알선해 상당수가 취업을 한 상황. 지금은 아직 일을 찾지 못한 20여 명만이 호텔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일부는 숙박비를 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텔 앞에서 만난 4명의 예멘인은 천주교 제주교구의 도움을 받아 임시 숙소로 옮기는 중이었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예멘 출신 난민신청자가 549명에 달했다. 지난해 42명과 비교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 12월 제주-쿠알라룸푸르 직항 노선이 생긴 뒤 예멘인들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에 들어온 것으로 법무부는 파악했다.

예멘 출신이 비자 없이 입국이 허용된 곳은 말레이시아, 에콰도르 등 전 세계 극히 일부 국가뿐이다. 제주도 역시 이들에게 유일한 무비자 체류 허가지역이었지만, 갑자기 늘어난 난민신청자 수에 한국 정부는 지난 1일부로 예멘을 '무사증 입국 불허' 국가로 지명했다.

지금은 이미 5월 제주도에 들어온 480여 명의 예멘 난민신청자가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유례없던 예멘인 대거 입국 사례에 출입국·외국인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한국 난민 정책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드러났다.

난민혐오 논란

공익법센터 어필의 전수연 변호사는 무엇보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난민'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난민에 대한 '혐오' 여론이 확대되는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예멘인 난민신청자들의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뒤 한 제주도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예멘인과 무슬림을 비판하는 게시글이 쏟아졌다. 또 앞서 지난 13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원 글에 동의자 수가 20만 명을 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수연 변호사는 한국은 이미 92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을 가입한 국가며, 별도의 난민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를 고려할 때 난민을 받을지 말지는 더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예멘은 "2015년 시작된 내전으로 인구의 70%인 2천만 명이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며, 19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음의 위협을 피해 예멘을 떠났다"며, 예멘 국적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국제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캡션 현재 제주도 내 약 480명가량의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있으며, 상당수가 어선, 양식장 등에서 숙식과 일을 함께하고 있다

주거 지원 미비

한국은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별도의 난민법을 제정, 2013년부터 시행했다. 난민법은 난민 인정자뿐만 아니라 심사를 기다리는 난민신청자들에게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에 있는 예멘인 난민신청자들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주거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현재 난민신청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보호시설은 인천 영종도에 있는 난민지원센터가 유일하다. 제주도에는 난민을 위한 별도의 시설이 없어 모텔과 여관방 하나에 3~4명이 함께 지내는 실정이다. 또 숙박비를 더는 감당하지 못해 곧 거리에 나올 상황에 놓인 이들도 있다.

또 예멘 난민신청자 중에는 여성(45명)과 7세 미만 아동(9명)도 있으며, 곧 출산을 앞둔 산모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제주의 시민, 천주교 단체의 도움으로 임시로 머물 곳은 찾았지만 앞으로 장기간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국토면적이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전국에 약 60여 곳의 난민지원시설이 있다. 네덜란드는 매년 난민 신청자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지만, 2017년 기준 약 3만 명가량의 난민신청자가 거주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모든 시설비와 주거비는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생계비 지원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의 신강협 소장은 예멘인들은 난민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생계지원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난민지원법은 난민신청자들에게 6개월이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생계비를 지원하도록 규정했다. 현재 정부가 난민신청자에게 지급하는 생계비는 1인 가구 기준 43만 원가량이다.

난민인권센터가 조사한 난민신청자의 처우에 따르면, 2017년 전체 난민신청자 1만 3295명 중 3.2%인 436명만이 생계비를 받았다.

BBC 코리아가 법무부에 확인해 본 결과 6월 27일 기준으로 제주도 예멘인 중 생계비를 받은 난민신청자는 한 명도 없었다.

법무부는 예산이 한정돼 난민신청자의 소득, 부양가족 유무, 질병, 임신 등을 고려하여 생계지원비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임산부 혹은 질병이 있는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난민 정책의 특징은 생계, 거주 지원을 안 하는 대신 난민신청자들에게도 취업활동을 허용한 것이다.

현 정책은 난민신청서를 낸 6개월 뒤부터 취업 활동을 보장하고 있지만, 특별히 이번 예멘인들의 경우 예외적으로 6개월 이전에도 취업 활동을 허가했다. 또 취업설명회를 통해 제주도 내 일손이 부족한 업종 특히 어업과 양식업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신분이 불안정한 난민신청자가 취업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다행히 제주도의 경우 이미 절반 이상의 예멘 난민신청자가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아직 일자리를 못 구했거나 건강, 나이, 소통, 경험 부족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일을 할 수 없는 이들도 많다.

어선에 일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돌아온 한 예멘인은 BBC 코리아에 "전에 어선을 타본 적이 없다. 하루에 7번씩 뱃멀미를 했고, 가만히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예멘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너무 임시방편으로 대책을 세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고 전수연 변호사는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난민정책 관계자는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돼야 난민신청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제주 예멘인 480명 중에는 수중에 돈이 떨어져 노숙할 처지에 있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거주, 이동의 자유

예멘 난민신청자의 거주, 이동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법무부는 지난 1일 예멘인들의 제주 무비자 입국을 금지했다.

애초 '제주 무사증 입국허가제도'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도입됐지만 본래 취지와 달리 "관광객이 아닌 외국인이 대거 제주도에 입국하는 상황이 발생해 부득이하게 예멘 국민의 제주 입국허가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또 제주도 내 예멘인은 제주도를 벗어나 서울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출도제한'을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BBC 코리아에 "출입국관리법에 입국허가를 하면서 활동 범위 제한을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출도제한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수연 변호사는 "출도제한 자체가 불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다만 최소한의 주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취업 활동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은 제주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워회 난민정책 관계자도 출도제한을 장기화한다면 난민법에 보장된 '거주, 이동의 자유'가 침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곧 제주 현지 조사를 통해 예멘인의 처우와 실태를 파악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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