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한국 진보정당사의 산 증인, 드루킹 의혹으로 극단을 택하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Image copyright 뉴스1

7월 23일 오전 9시 30분에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에 원내대표인 노회찬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서면으로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문제와 KTX 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에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KTX승무원들 역시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을 믿고 일해 왔는데 자회사로 옮기라는 지시를 듣고 싸움을 시작한지 12년 만입니다.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두 사안 모두 앞으로 최종 합의 및 입사 등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잘 마무리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산재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안을 10여년이나 끌게 만들고, 상시적으로 필요한 안전업무를 외주화하겠다는 공기업의 태도가 12년 동안이나 용인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정치인 노회찬의 마지막 공식 발언으로 남게 됐다. 같은날 9시 38분경 노회찬 의원은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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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시신이 구급차에 실려 나가고 있다

누구도 그의 마지막 발언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이 상무위원회 모두 발언은 공교롭게도 정치인 노회찬의 주된 테마였던 노동 문제와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 권력 문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

노동운동으로 정치 입문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노회찬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회찬 또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대학생 신분을 속이고 제조업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다.

"그때만 해도 저희는 변혁을 위해서 노동자가 되어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 청소년 직업학교 다녀서 용접기술을 배웠죠." 노회찬은 2003년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속해 있던 인천 노동운동 세력은 그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으로 발전한다. 흔히 '인민노련'으로 일컬어지는 이 단체는 많은 진보 운동가, 정치인을 낳았다.

진보정당 창당 추진

노동운동계는 90년대 들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혁명' 노선 대신 제도권 내 합법적인 정당을 통한 정치운동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민노련 또한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을 준비하다가 민중당과 통합하여 1992년 총선을 치렀으나 민중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고 해산됐다.

이후 이재오와 김문수 같은 대표적인 노동계 지도자들은 김영삼의 민주자유당에 합류했다.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꾸리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노회찬을 비롯한 인사들은 '진보정당추진위원회'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2000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그 노력의 결실이었다. 노회찬은 2002년 민노당의 사무총장으로 선출된다.

민노당은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3.98%를 얻고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는 등 진보정당으로서는 초유의 성과를 거두었다. 노회찬 또한 2004년 비례대표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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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05년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의 쌀 시장 개방에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성 문제로 의원직 잃기도

국회의원 노회찬은 노동 문제 뿐만 아니라 의원 재직 중 재벌 권력의 견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삼성과 검찰의 유착에 대한 그의 폭로는 나중에 재판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으로 이어지면서 그의 정치인생에 역정이 되기도 했다.

2005년 8월 노 의원은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전현직 검사들의 실명을 폭로했는데 이로 인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의 기소를 받았다.

2013년 대법원이 이에 대해 징역형을 확정지으면서 2012년 총선에서 당선된 노 의원은 당선된 지 10개월 만에 의원직을 잃었다.

노회찬과 진보정당의 수난

그 8년 동안 정치인 노회찬은 물론이고 진보정당 또한 많은 풍파를 겪었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노선 갈등으로 노회찬은 심상정과 함께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창당하고 2008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은 이후 분열을 거듭하다가 가까스로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으나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 등으로 2012년 다시 분열한다.

이때 노회찬과 심상정 등이 탈당하여 만든 진보정의당은 오늘날의 정의당이 됐다. 통합진보당은 이석기 사건으로 2014년 헌정 사상 최초로 절차에 따라 위헌정당으로 인정돼 강제해산됐다.

2013년 의원직을 잃은 후 2014년 보궐선거에서도 패배한 노회찬은 2016년 총선에서 경남 창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진보 정당인으로서 보기 드문 3선이었다.

드루킹 사건에 휘말리다

초기에 인터넷 여론 조작과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의 연루 의혹으로 시작된 드루킹 사건은 특별검사팀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노회찬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이어졌다.

특검팀은 7월 드루킹 일당이 2016년 노 의원에게 5천만 원을 전달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었다.

2016년 당시에도 관련 혐의로 수사가 있었으나 실제로 돈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됐다. 그러나 특검은 위조된 증거로 무혐의가 나왔다고 판단하고 다시 수사를 하고 있었다.

노 의원은 특검의 재수사 소식이 전해진 후인 3일 기자들에게 총선 당시 드루킹 일당을 만난 적도 없으며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3일 노회찬 의원이 투신한 아파트에서 발견된 유서에서는 드루킹 사건에 관해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으며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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