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의 '기무'는 대체 무슨 뜻일까?

경기도 과천의 국군기무사령부 입구 Image copyright 뉴스1
이미지 캡션 경기도 과천의 국군기무사령부 입구

계엄 문건으로 쿠데타 모의 의혹까지 받고 있는 국군기무사령부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전화까지 도청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기무사가 폭넓은 도감청 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을 지속해왔다고 주장하면서 기무사의 해체를 촉구했다.

한때는 대원들이 암행어사먀낭 '마패'를 차고 다녔던 기무사의 역사는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등의 월권 행위로 얼룩져있다.

실은 '기무'라는 낯선 이름부터가 그 역사의 산물이다.

'기무'의 의미

기무사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군 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갖는 의문 중 하나는 '기무'라는 이름의 의미다.

국군기무사령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그 역사를 같이 할 정도로 오래된 조직이지만 '기무'라는 낯선 이름을 쓰게 된 것은 1991년부터였다.

기무사는 '기무'라는 이름에 대해 웹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무(機務)'라는 말은 '근본(根本)이 되는일',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政務)'등의 의미로 조선말기 고종이 국정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통리기무아문'(通理機務衙門)'과 갑오개혁(1894)시 정치ㆍ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보던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사용한 전례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를 다루는 군내 사령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정확히 기무사가 하는 일이 뭔지 알기 어렵다. 군 관련 사안은 많은 것들이 중요하고도 기밀하지 않을까?

기무사는 군사보안 및 방첩, 군 관련 및 첩보 수집, 공안 관련 범죄수사, 정보전 지원 등을 부대의 임무로 소개한다.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사실 기무사는 1991년 이전에는 보다 알기 쉬운 '국군보안사령부'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1977년부터 사용해 왔던 이름이다.

보안사가 기무사로 바뀌게 된 계기는 바로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병사의 민간인 사찰 폭로였다.

1990년 보안사 소속이었던 윤석양 이병은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의 주요 정치인을 비롯한 민간인 130여 명에 대한 사찰 자료를 갖고 탈영해 이를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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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전두환은 제20대 보안사령관으로 재임 중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 1980년 대한민국의 11·12대 대통령이 됐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이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군이 민간인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폭로의 여파는 매우 컸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을 해임하고 보안사령부가 군 내의 문제에만 집중하도록 하겠다며 조직을 개편하고 이름을 기무사령부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2009년에는 쌍용자동차 파업 농성 현장에서 집회 모습을 촬영 중이던 기무사 소속 대위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붙잡힌 바 있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빼앗은 캠코더 등의 기록장치에는 민주노동당 당직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일상 등을 촬영한 자료가 담겨 있었다.

2011년 법원은 이 '불법사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총 1억2600여 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2011년 9월에는 기무사 소속 장교들이 대학교 교수의 이메일과 웹하드를 해킹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마패'까지 지급했던 기무사의 전신

기무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무사에서 잡음이 나온다는 것은 잘 안다.

실상 기무사의 정치 개입은 기무사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뿌리 깊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자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내내 기무사가 댓글 공작이나 민간인 사찰 등으로 정치개입을 해왔다는 의구심은 사실로 밝혀졌다.

기무사가 매번 문제가 되는 까닭은 기무사가 갖고 있는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무사의 시초는 1948년 조선 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조직 구성은 한국전쟁 때부터다.

전쟁으로 대공임무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미군 방첩대(CIC)를 모방한 '특무대'가 육군에 먼저 생겨났고 해군과 공군에도 '방첩대'와 '특별수사대' 등의 이름으로 유사한 조직이 생겨났다.

방첩활동이 매우 중요했던 상황에서 특무대, 방첩대 요원들에게는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한이 주어졌다.

기무사는 2006년 1950~60년대 이들에게 지급된 메달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마치 조선 시대에 암행어사가 들고 다녔던 '마패'와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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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기무사가 2006년 공개한 특무대 공무집행 메달(왼쪽)과 북한 무장간첩들이 위조한 메달(오른쪽)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 문제의 메달에 새겨진 글귀는 당시 특무대원들이 어떤 권력을 휘둘렀는지를 잘 보여준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쉽게 오용되기 마련이다. 1955년 검거된 북한의 무장간첩 일당도 이 메달을 위조하여 갖고 다녔을 정도.

'보안의 권력화'

1977년 육해공군의 보안 관련 부대가 통합돼 보안사령부로 재편되면서 '보안의 권력화'는 더욱 심해졌다.

정보 수집과 수사, 방첩 임무를 한 몸에 수행하기 때문에 수집하는 정보의 폭과 양이 광범위한데다가 보안사령관은 대통령에게 1:1로 직접 보고할 수 있었다.

때문에 직제상 엄연히 국방부장관의 통제를 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실상은 장관마저도 보안사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의 군에서 이 정도의 권한을 한 손에 쥔 조직은 극히 드물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한 1979년 10·26 사건 이후 쿠데타로 권력을 획득한 전두환 대통령이 20대 보안사령관이었고 이후 집권한 노태우 대통령은 21대 보안령관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름은 바꿨어도 행태는 여전

민간인 사찰 폭로로 인해 이름을 기무사로 바꾼 이후에도 기무사의 행태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지난 30일 군인권센터는 각종 집회는 물론 심지어 서울퀴어문화축제에도 기무사가 요원을 파견해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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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열린 기무사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또한 군인권센터는 기무사가 군 회선을 사용하는 유무선전화를 수시로 도청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의 통화까지도 감청했었다고 내부제보를 인용해 주장했다.

군인권센터의 폭로 중 흥미로운 것은 기무사가 인원 사찰로 많은 비난을 받자 그 대신 '보안 검열'을 활용해 군내 권력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의 보안 검열은 "예방 목적보다는 목표 대상을 지정한 사냥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군 보안 점검에서 헛점이 발견되면 곧바로 징계 등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안 점검은 직업군인(간부)들에게 두려운 존재라는 설명이다.

이번에는 바꿀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 말기 기무사가 계엄령 선포에 대비해 작성한 문건이 '쿠데타 모의'를 의심케 할 정도로 상세하며 반민주주의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조사할 것을 직접 지시했으며 기무사 개혁 TF에 쏠리는 기대와 요청도 커졌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기무사 개혁 시도가 있어왔지만 큰 소득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무사가 갖고 있는 권한 자체에 본질적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기무사가 갖고 있는 정보 수집과 수사, 방첩 기능을 어떻게 분리해 관리하느냐가 기무사 개혁의 주된 문제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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