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몰고 북한가던 '금강산 관광'

금강산 호텔 접대원 Image copyright 뉴스1
이미지 캡션 금강산 호텔 접대원

남북관계가 화해모드로 급변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 통일부는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내달 1일 금강산 지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천 차관은 다음 달 금강산에서 열릴 이산가족 상봉 시설의 개·보수 작업을 현장점검하기 위해서 방북할 예정이다.

금강산 관광 주사업자인 현대그룹 역시 오는 8월 3일 현정은 회장이 북한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금강산에서 고 정몽헌 전 회장의 15주기 추모식을 여는 한편, 북측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눌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 기관지 노동신문 역시 31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촉구하는 평을 실었다.

이 신문은 "금강산은 민족의 자랑이고 겨레의 긍지로서 다른 그 누구보다 우리 겨레가 마음껏 경치를 향유하고 기쁨을 누려야 한다"며 "자기 민족의 명산을 부감하는 데 외세의 제재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며 금강산 관광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남북 교류의 상징이었던 금강산 관광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봤다.

Image copyright 뉴스1
이미지 캡션 금강산 전경

'소 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 연 현대 고 정주영 회장

"고려국에 태어나서 한번만이라도 금강산을 보면 좋겠다" 중국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는 늘 금강산을 가보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금강산을 소재로 한 글을 모으면 도서관이 되고, 금강산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모으면 미술관이 된다"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 역시 금강산이 소재로 쓰인 역사적 예술 작품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가 둘로 나뉜 뒤 금강산은 실향민들에게 그리움의 상징으로 통했다.

금강산 관광의 포석을 놓은 사람도 실향민 출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북측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정 회장은 대북 사업에 대한 애착이 컸다.

1998년 6월과 10월, 정주영 명예회장은 소떼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방문했다.

이른 바 '소떼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에는 화해 분위기가 연출됐고, 금강산 관광 사업, 개성공단 발판도 마련됐다.

정 회장은 1998년 6월 16일 1차 방북 당시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이 같이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올해 남북 정상회담 당시,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소떼길에 나무를 심었던 이유도 이런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1998년 10월, 현대와 북한은 전격적으로 '금강산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체결한다.

대상자는 한국 내국인에게 국한됐고, 외국인은 내국인의 관광상품을 이용해야 했다.

이미지 캡션 금강산 관광코스 중 하나였던 해금강

금강산 관광은 처음에는 배로만 가능했다.

같은 해 11월 18일 금강호가 동해항에서 남한의 관광객들을 태우고 첫 출항을 했다.

1999년 2월 현대는 금강산 관광을 전담할 현대아산도 창립하기 이른다.

육로 관광시대, 버스에서 승용차로 확대

2003년 9월 금강산 육료관광 시대가 열린다.

Image copyright 뉴스1
이미지 캡션 육로 관광에 사용되던 금강산 버스

분단 반세기 만에 남한에서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일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강원도 고성에 마련된 출입국관리소에서 북한입국허가서를 교부받고 입국심사를 통과한 후,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북으로 들어가는 형식이었다.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해로관광은 2004년 1월에 중단됐다.

육로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2004년 6월에는 1박 2일이나 당일 관광 상품도 나오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미지 캡션 금강산 육로관광 당시,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남한 대학생 관광객들

그러나 북한이 2006년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금강산 관광은 이어져왔다.

2007년 6월부터는 금강산 내금강 관광도 시작됐다.

이미지 캡션 북한 금강산 관광 코스 중 하나였던 고성항(장전항)

2008년 3월에는 관광객이 직접 승용차을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으로 향하는 관광시대가 펼쳐지기도 했다.

왕복 4차선 도로를 이용하되 승용차 속도는 시속 50km 로 제한됐으며 내비게이션은 반입이 금지였다.

같은 해 6월에는 금강산 수정봉과 집성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골프장이 완공되기도 했다.

그러나 개장 두 달도 안 되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2008년 7월 11일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이 쏜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당시 북한측은 박왕자 씨가 이른 아침 산책하며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당시 통일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 측이 이야기한 피격 시간과 장소는 엇갈리는 측면이 있었다.

이 사건 다음 날 한국 정부는 금강산 관광 출발을 금지했고, 이틀 후에는 금강산 내 관광객을 전원 철수시키면서 금강산 관광은 전면 중단됐다.

Image copyright 뉴스1
이미지 캡션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출입국 사무소가 있던 강원도 고성군 최북단 마을 식당들도 문을 받았다

그때까지 북한을 방문한 관광객수는 총 196만명이었다.

한 때 1000명이 넘던 금강산 관광을 담당해온 현대아산의 직원 수는 1000명에서 올해 초 기준 15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관련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