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특사: '특사 외교'로 북핵 위기 돌파 시도... 역대 대북특사 누가 있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

중국 유비의 특사 '제갈량', 대한제국 고종의 특사 '이준, 이위종, 이상설',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특사 '헨리 키신저'.

'특사 외교' 하면 떠올리는 이름들이다.

국가 지도자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자신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상대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사람을 특사로 발탁해 상대국에 파견한다.

한국 특사단이 이틀 후 평양을 방문한다. 위기에 봉착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풀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옥스포드 딕셔너리에 따르면 특사(envoy)의 어원은 '여행 중'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하지만 5일 평양을 방문하는 정의용 특사를 포함한 특사대표단 5명의 여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지도 미지수다.

지난달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했고, 나흘 후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중단된 연합훈련 재개를 시사하며, 북미 간 협상이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북 특사는 누가 있었으며 그들의 '특사 외교'는 과연 위기를 돌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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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 (1999년)

대북 특사의 경우 북한과 공식 외교채널이 없고, 또 북한 핵∙미사일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가진 미국에서 주로 파견됐다. 특히 북한과의 대화를 꾸준히 시도한 클린턴 정권에 집중돼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다. 그는 1994∼1997년 국방장관을 거쳐 1999년에는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다.

그해 5월,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같은 해 10월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담은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았다. '페리 프로세스'는 ▶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중단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을 권고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방북 후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 완화 조치를 발표했고, 북한은 미사일 발사시험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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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국정원장 (2000년)

한국의 경우 정식으로 대북특사를 임명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페리 프로세스'가 나오고 북미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점이었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안기부장,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정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정식으로 임명된 특사 자격은 아니었다.

2000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은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을 대북특사로 임명해 북으로 보냈다. 이후 임동원 국정원장은 '햇볕정책'을 지휘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조율했다.

2002년 임 원장은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관 자격으로 한반도의 안보위기 타개책 마련을 위해 한 번 더 방북했는데, 이때 방북단에 서훈 현 국정원장과 조명균 현 통일부 장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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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출범하고, 2001년 9·11 테러를 겪은 부시 대통령은 2002년 국정연설에서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같은 해 10월,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고 있다고 판단해 북한과의 대화를 끌어내고자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를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파견했다.

하지만, 북미 관계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켈리 차관보는 북한에 우라늄 농축 핵프로그램을 시인하라고 압박했고,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우리는 더한 것도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맞섰다.

언론은 이 발언을 북한이 우라늄 농축 핵프로그램 보유를 시인했다고 보도했고, 이 결과 제네바 합의는 폐기됐고, 한반도는 다시 북핵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은 북한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과 엮어 불량국가(rogue state)로 규정하고 압박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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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 (2005년)

참여정부 시절 활동한 대북특사로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있다.

2005년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2시간 30분 동안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논의했다. 아울러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켰다. 같은 해 6자회담 참여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명시한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다.

정동영 전 장관은 지난 3월 YTN 인터뷰에서 당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핵 문제를 어떻게 진행할 것이냐고 여러 번 물었다며,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없어지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5일 방북할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김정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을 많이 만났고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말을 (자신과 함께) 같이 들었던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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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3년 북한 방문 후 베이징 공항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인 빌 리처드슨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2007년)

자국민의 보호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미국은 종종 특사를 통해 전쟁 유해 송환, 억류자 석방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북미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대북특사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빌 리차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가 대표적인 예다.

리차드슨 주지사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 유엔(UN)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하면서 북한 문제를 다뤘고, 2003년 주지사에 당선된 직후 남∙북 특사를 주지사 공관에 초청해 대화를 주선한 바 있다.

아울러 1996년 하원 의원 시절에는 스파이 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의 석방을 도우려고 북한을 방문했다.

리처드슨 주지사의 2007년 방북 때는 빅터 차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이 동행해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송환을 논의하고 핵 프로그램 폐기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 결과 북한은 한국전 당시 북한에서 숨진 미군 유해 6구를 미국측에 송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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