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김창호 원정대, '아무도 안 가본 길' 찾았던 이유는?

지난 2013년 5월 산악인 김창호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을 하고 있는 모습 Image copyright 뉴스1 /몽벨
이미지 캡션 지난 2013년 5월 산악인 김창호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을 하고 있는 모습

지난달 28일 히말라야를 등반하다 숨진 한국 원정대는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던 중이었다. 전문 산악인 9명이 동시에 사고를 당한 것은 산악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7년 전 고 박영석 대장 역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새로운 등정로를 찾느라 숨졌다.

이들은 왜 이런 위험을 무릅쓰면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등산에는 등정주의와 등로주의가 있다.

등정주의는 정상에 오르는 '결과'를 목표로 하며,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반면 등로주의는 새로운 길을 찾으며 역경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에 의의를 둔다.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오르기까지 '과정'을 더 중시한다.

김창호 대장은 등로주의 국내 대표 산악인이었다.

무산소, 무동력으로 산에 오르는 '알파인 스타일'을 추구했다.

김 대장은 생전에 산악잡지 아웃도어를 통해 "울타리를 넘어야 내가 가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며 "산악인이 산에 가는 것도 자신이 가둔 테두리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가는 과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산악인에게는 최대 영예로 꼽히는 황금피켈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등반 업적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의 중요한 의미를 깨닫는 것, 고산 등반은 살면서 느끼지 못하는 작은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도전했던 구르자히말,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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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세계에서 가장 높은 14개 봉우리 중 8개가 네팔에 있다

김창호 대장이 이끌던 이번 원정대가 등반 중 사고를 당한 곳은 네팔 서부 히말라야 산맥 중 다울라기리 산군에 속한 구르자히말이다.

세계에서 7번째로 높다.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구르자히말은 정상을 오른 사람이 3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1996년 이후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다.

해발고도가 7193m로 에베레스트의 해발고도 8848m보다는 낮지만, 산세가 거칠고 급경사가 많아 험지로 꼽힌다.

김창호 원정대는 2016년부터 '코리안웨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산에 신루트를 개척해 코리안웨이로 이름을 붙이는 프로젝트로, 이번 원정 역시 코리안웨이의 일환이었다.

지난 2013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의 봉우리 14개를 무산소로 등반을 해 산악계의 큰 족적을 남겼다.

히말라야에서만 3개의 '코리안 웨이'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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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왼쪽부터 원정에 참가한 임일진 감독, 김창호 대장, 이재훈 씨, 유영직 씨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그의 좌우명은 '집에서 집으로(From Home to Home)'이었다. 즉, "가장 성공한 원정은 안전한 귀가"라고 말할만큼 안전을 중요시 했다.

그러나 원정대의 도전은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원정대는 사망하기 직전 눈보라가 거세지자 캠프를 치고 좋은 날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네팔 마이아디 지역 공부원 릴라다르 아디카리는 BBC에 "캠프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며 "캠프가 평소보다 높은 고도에 세워졌다고 추정하지만, 철저히 조사를 한 후에야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게 되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14일(현지시각) 김창호 원정대원 5명과 네팔 가이드 4명에 대한 시신 수습과 카트만두로의 이송이 마무리 됐다.

주네팔대사관과 외교부는 유족 및 한국산악회 등과 상의 후 장례절차를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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