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황손 이석, '할아버지 고종 황제, 제대로 평가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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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손 이석이 말하는 '조선 그리고 고종'

113년 전인 1905년, 한반도의 11월은 칼처럼 추웠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게 넘어간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당시 조선은 속절없이 나라를 내줘야 했다. 외척 세력에 휘둘렸던 '과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고종은 일본에 속절없이 나라를 내준 왕이라는 역사적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으로 인해 대한제국과 고종을 다시 바라보는 시도도 생겨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고종은 외세에 마냥 무력했던 왕이 아니라 뒤에서 의병을 지원하고 자주권 확보를 위해 막후 외교를 벌인다.

Image copyright 황실문화재단
이미지 캡션 조선 제 26대 왕 고종

황손 이석(77)에게 이런 분위기는 반갑다.

그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12남 9녀 중 11남이다. 즉, 할아버지는 고종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흥선대원군이다. 황녀였던 덕혜옹주는 고모가 된다.

이석 외에도 살아있는 의친왕 자손이 몇 있다. 하지만 한국에 남아있는 왕자는 그가 유일해 '마지막 황손'으로 불린다.

고종을 향한 엇갈리는 평가

"일본과 친일파들이 당시 역사를 왜곡하는 바람에 고종 황제께서 노력하신 부분이 있지만, 알려지지 못했다"

경복궁에서 만난 이석 씨는 고종이 역사의 평가처럼 미약한 왕만은 아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고종 황제께서는 헤이그 특사도 보내시는 등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고종은 밀지를 보내 의병장 임병찬에게 독립의군부를 조직하도록 했다. 대한매일신보에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알리는 친서를 발표하기도 하는 등 관련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나 현 시대 대한제국과 고종을 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가운 부분이 있다. 결국 나라를 잃게 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한 날에도 그는 '울컥'했다.

왕이 앉던 근정전 어좌를 응시하며 옛 생각에 젖어있는데, 옆에 있던 관광객이 한 말 때문이었다.

"저기는 도둑놈들이 앉았던 자리야"

이 말에 이 씨는 눈을 크게 뜨며 "이봐, 역사를 그렇게 알면 안 돼"하고 큰 소리로 응수했다.

노래하는 왕자

실은 그에게 비난의 목소리는 낯설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세간의 비난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망하게 한 왕가의 후손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극심한 생활고도 그를 힘들게 했다.

후궁이었던 어머니는 막걸리와 국수를 팔았고 이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종로에 있는 '뉴월드' 같은 음악 다방에서 DJ하거나 사회를 보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미군 부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팁을 받기도 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한 왕가 어른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어떻게 왕손이 광대가 되냐"며 땅을 치며 울었다고 한다.

Image copyright 이석
이미지 캡션 '노래하는 왕자'로 불렸던 이석의 앨범

1969년 그는 '비둘기 집'이라는 앨범을 낸다.

이 노래는 결혼식 축가로 자주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그 뒤로 앨범을 연이어 내긴 했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살고 있던 궁에서 신군부에 의해 쫒겨나야 했고, 사람들도 조선 왕실에 대해 욕을 했다.

참담해진 이 석 씨는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미국으로 떠난다.

그러나 미국에서 삶도 녹록치 않았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하루 16시간 일을 하며 살아야 했던 것.

오전에는 정원사로, 점심에는 비버리 힐즈 수영장 청소부로, 저녁에는 총을 차고 마트에서 경비원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냐는 물음에 그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힘들다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고 답했다.

10년 뒤 고모 덕혜옹주 장례식을 계기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방황은 이어졌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엔 차로 경복궁 대문에 부딪쳐서 죽겠다고 유서를 썼는데 이게 알려지는 바람에..."라며 주변의 만류로 다시 마음을 바꾸게 됐다고 회고했다.

'헬 조선'

황손 이석 씨는 현재 조선왕조 발상지인 전주에서 우리 문화를 설명하고 알리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전주 시의 배려가 있었다.

그는 여생을 '역사 바로 세우기'에 전념하고 싶다고 밝혔다.

물론 과오도 있지만 공도 알아야 한다는 것. 고종 황제 재평가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 씨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부분을 밝히고 가고 싶다. 그래야 지금 이 나라의 자존심이 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청년층 사이에서 자조적인 현실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헬(Hell) 조선'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왜곡된 역사관을 조장하므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외치는 상황이 참담하고 걱정이 된다고 말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 사회가 잘못됐다면...바로 잡는 것이 젊은이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헬조선 대신, 희망의 대한민국도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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