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 한국에 뱅크시 같은 작가가 없는 이유

뱅크시가 최근 영국 웨일스의 한 차고에 남긴 그림 Image copyright PA
이미지 캡션 뱅크시가 최근 영국 웨일스의 한 차고에 남긴 그림

영국 웨일스의 한 담벼락에 그려진 뱅크시(Banksy)의 작품을 누군가 훼손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을 의뢰했던 현지 주민 개리 오웬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술 취한 얼간이가 뱅크시 작품의 펜스와 보호 유리를 훼손하려고 했다"고 했다.

이어 "이 작품은 포트 탤벗과 니스 그리고 인근 지역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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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작품을 의뢰했던 현지 주민 개리 오웬은 "술 취한 얼간이가 뱅크시 작품의 펜스와 보호 유리를 훼손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작품은 훼손되지 않았다. 보안요원이 문제의 행인을 쫓아냈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오웬은 전했다.

뱅크시는 전 세계 도시의 거리와 벽 등에 그래피티(낙서처럼 그리는 거리예술)를 그리고, 유명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두는 등의 '게릴라 아트'로 유명하다.

뱅크시의 '눈 먹는 소년' 벽화의 경우, 차고의 한쪽 담벼락에는 한 아이가 팔을 벌리면서 내리는 눈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려졌지만, 다른 한쪽에는 불이 붙은 통에서 먼지가 내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즉, 아이가 먹으려고 하는 눈은 사실 눈이 아니라 불에 탄 재라는 것으로, 철강 생산으로 유명한 이 지역의 대기 오염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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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떨까? 뱅크시와 같은 게릴라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있을까?

한국에서는 게릴라 그래피티 아트가 활발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재물손괴죄

지난 6월 남대문 경찰서는 그래피티 작가 정태용 씨를 불러 조사했다. 청계천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고 SNS에 사진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이 베를린 장벽은 1961년 동독에 설치된 장벽 중 일부로, 2005년 베를린시가 남북 통일을 기원하는 취지에서 서울시에 기증했다.

경찰 조사에서 정 씨는 "유럽을 여행할 때 베를린장벽에 예술가들이 예술적 표현을 해놓은 걸 봤는데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흉물처럼 보였다"고 그림을 그린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이 장벽의 소유권을 지닌 서울시는 지난 10월 정 씨를 상대로 형사상 처벌과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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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서울 청계천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에 그래피티가 그려졌다

한국에서 그래피티는 불법낙서로 간주돼 재물손괴죄와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처벌받는다. 재물손괴로 입건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 원 이하 벌금, 건조물침입은 3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예술가 홍승희 씨도 2015년 홍익대 부근 공사장 가벽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래피티를 그려 재물손괴죄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지하철은 캔버스

특히 한국의 지하철이 외국 그래피티 단체들의 타깃이 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된 바 있다.

가장 최근 주목받은 사례로 지하철 1호선과 6호선 전동차에 그래피티를 남긴 외국 그래피티 그룹 "SMT"가 있다.

SMT의 두 영국인 멤버들은 지난해 7월 서울 군자차량사업소와 신내차량업소에 몰래 들어가 전동차에 'SMT'라는 문자를 남겼다.

이들은 경찰에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고 법원은 재물손괴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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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러시아인 2명이 지난 2016년 대구 지하철에 그래피티를 그린 후 달아났다

지난해 4월에는 한 호주인이 서울 수서 차량기지에 무단 침입해 전동차에 'TONGA'라는 낙서를 남긴 혐의로 구속됐고, 2016년에는 러시아인 2명이 대구 동구의 지하철공사 안심기지사업소 내 주차된 지하철 전동차 두 량에 스프레이를 이용해 'ONAS' 등의 글자를 그린 뒤 달아나 경찰에 붙잡혔다.

일각에서는 해외 지하철에 비해 한국 지하철은 그래피티가 없는 '깨끗한 캔버스'라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에게 매력적이라고 해석했다.

공공미술에 관한 논의 부족

한국에도 부산 광안리의 대형 벽화 '세상을 관찰하는 빅보이'(2012)를 그린 구헌주로 대표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있다.

하지만 뱅크시처럼 반전, 반핵, 국가 폭력, 기아, 환경 문제와 같은 인류 공통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날카롭게 다룬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없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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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뱅크시가 영국 런던 쇼디치 인쇄소 벽에 그린 하트 모양 풍선을 날리는 소녀

문소영 성신여대 겸임교수이자 미술 기자는 한국에서는 "그래피티와 게릴라 아트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며 문화와 전통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BBC 코리아에 말했다.

"미술이 저항의 수단이 될 때, 해외에서는 벽에 그래피티로 그리는 반면 한국은 걸개 그림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BBC 코리아에 "그냥 예쁜 낙서는 의미가 없다"며 "예술과 장식의 차이, 공공미술에 대한 고민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소영 교수 역시 벽화와 공공미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을 것도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공공미술에 대해 집필한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메트로에 공공미술은 미술을 매개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며, 시대적 사안에 대해 논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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