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관 망명: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는 어디에?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조성길 북한 대사대리 Image copyright @giuliapompili
이미지 캡션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조성길 북한 대사대리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서방 국가로의 망명을 타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조성길 대사대리는 지난해 11월 초에 공관을 이탈해 부부가 함께 잠적한 상황"이라고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3일 정보위 민주당 간사 김민기 의원은 조 대사대리에 대하여 "2018년 11월 말에 임기가 만료되는데, 임기 만료에 앞서 부부가 함께 공관을 이탈했다"는 내용을 국정원으로부터 보고받았다고 국회에서 전했다.

앞서 중앙일보는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조 대사대리가 서방 국가로의 망명을 타진 중이라고 전했다.

김 의원은 "조성길 대사대리는 2015년 5월 이탈리아 공관에 3등 서기관으로 부임해 1승 서기관으로 승진한 인물"이라며 "잠적 이후 두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정원과 조 대사대리 사이에 어떤 연락도 취해지거나 받은 적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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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북한과 이탈리아와의 관계는?

조성길이 부인 및 자녀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생활했다고 중앙일보는 전했다. 하지만 김민기 의원은 부인과 함께 잠적했다고만 말하며, 자녀도 함께 잠적했는지 여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0년 1월 이탈리아와 외교 관계를 맺고 그해 7월 대사관을 개설해 운영 중이지만, 양국 간의 관계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귀순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1992년 11월 이탈리아 정부가 중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를 통해 양국의 관계 발전 문제를 토의하자고 제의해왔다고 썼다.

이탈리아 국회는 전통적으로 사회당과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했고, 김일성과 김정일은 반색했다고 태 전 공사는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외교관의 북한 방문은 이듬해 1차 북핵 위기 등으로 인해 수교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9월 3일) 이후 이탈리아 당국은 문정남 대사를 추방했으며 그해 10월부터 조성길이 대사를 대리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북한 외교관 망명 사례는?

만약 망명이 맞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뒤 대사급의 망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과거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던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 사례는 수차례 있었다.

1997년에는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영국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형(장승호)과 가족을 동반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2016년엔 영국 대사관의 태영호 공사가 한국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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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태영호 전 공사

"대사관에서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대사관을 나와 400m쯤 걸었다. 다시 대사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일생을 바쳐온 북한 체제와 영원히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떠나고자 오십 평생을 살아왔는가,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라고 태영호 전 공사는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에 썼다.

대사급 외에는 1991년에 망명한 고영환 콩고 대사관 1등서기관과 1996년 망명한 현성일 잠비아 대사관 3등서기관이 있었다.

망명 이유는?

조성길 대사대리의 잠적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11월 임기가 만료되는 것으로 미뤄볼 때 이에 불응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 외교관의 망명 이유는 다양하고 안 알려진 경우도 있다.

태 전 공사는 저서에 북한 당국이 맏이를 북한에 보내라고 명령했고 학기가 끝날 때까지만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는 못살겠다.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살 권리도 없는가"라며 "자식에게만은 소중한 자유를 찾아주자. 노예의 사슬을 끊어 꿈을 찾아 주자"라고 생각해 탈북을 결심했다고 저서에 썼다.

장 이집트 대사가 망명을 결단한 이유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의 소리(VOA)는 당시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였던 임성준 전 대사가 서방세계에 1년 앞서 망명한 아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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