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상 최초로 구속된 전 대법원장 사건 속엔 더 큰 폭탄이 숨어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Image copyright 뉴스1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됐다. 사법부의 수장이 구속된 것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4일 새벽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에 대해 검찰이 제기한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였다.

무슨 이유로 구속됐나?

이제는 '사법행정권 남용'이란 표현으로 정리돼 통용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판사 블랙리스트', '재판 거래', '사법농단'이라는 다채로운 표현으로 거론됐던 문제다. 이 중 하나라도 들어본 기억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맞다.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장으로 법원행정처를 통해 사법부의 행정을 총괄한다. 그래서 '사법행정권'이다.

무엇보다도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조직 내에서 승진과 징계의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 시절 대법원장을 필두로 정권이 관심을 갖는 재판 사건들에 대해 '정치적'인 판결을 내리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2017년부터 제기됐다.

법관이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온라인 여론 조작 의혹 사건 등의 재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고 법관에 대한 사찰과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사상 최초로 대법원장이 구속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에서 사법부는 다른 정부 기관보다 상대적으로 큰 독립성을 인정받아왔다.

법관들의 임기는 거의 예외 없이 보장됐으며, 인사권 또한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위해 사법부 출신 인사들이 주요 보직을 맡는 법원행정처에서 행사했다.

법원이 전직 수장인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승인했다는 것은 검찰이 제기한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했음을 뜻한다.

따라서 사법부는 보장된 독립성을 갖고 되려 법권들의 양심에 따른 재판을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대법원장은 무엇 때문에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했나?

대법원장은 판사가 사법부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위이다. 6년의 임기도 거의 예외없이 보장됐다.

이미 대법원장이 된 이상 더 바랄 게 없어 보였던 양 전 대법원장은 그럼 무엇을 바라보고 정권과 '재판 거래'를 시도한 것일까?

작년 5월 말 이 문제를 조사했던 사법부의 특별조사단은 양 전 대법원장의 관심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신설'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했다.

상고법원이란 상고심만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법원을 가리킨다. 법원이 새로 생기면 새로 생긴 법원의 법관들에 대한 인사권도 대법원장에게 생긴다. 대법원장의 권한이 더 확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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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양승태 구속의 여파는 어떻게 번질까?

전례 없는 전직 대법원장 구속이 일어났지만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될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따른 법관들에 대한 '탄핵'까지 거론된 바 있을 정도다.

전국의 판사 대표들로 구성되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작년 11월 가진 회의에서 이번 의혹을 두고 징계 뿐만 아니라 "탄핵 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말했다.

이론상으로 법관 또한 탄핵 소추가 가능하지만 지금까지 법관에 대한 탄핵이 일어난 적은 없다.

이미 몇몇 시민단체에서 탄핵 소추가 필요한 법관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도 했기 때문에 앞으로 또다른 '헌정 사상 최초'를 목격하게 될 수도 있다.

더 큰 폭탄은 국회에 있다

하지만 더 큰 폭탄은 입법부에 숨어 있다.

국회의원들이 법원행정처에 특정 재판들에 관한 '청탁'을 했다는 정황이 검찰 조사에서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2015년 국회 파견 판사에게 지인의 아들의 강제추행미수죄에 대한 재판에 대한 선처를 요청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상고법원 신설 법안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서 의원을 위해 해당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법원의 법원장에게 전화를 해 선처를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도 당시 법원행정처가 홍 의원의 민사 사건과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해 검토한 의혹을 받고 있다. 홍 의원은 상고법원 신설 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가 결탁한 정황이 드러난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향후 수사가 진행되면 더 많은 국회의원의 '청탁'과 '거래'가 밝혀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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