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외에 아는 분 있나요?'

(캡션) 이육사 시인의 친척으로 의열단 활동을 하며 항일운동을 한 이병희 지사(왼쪽) 그리고 이윤옥 소장 Image copyright 이윤옥
이미지 캡션 이육사 시인의 친척으로 의열단 활동을 하며 항일운동을 한 이병희 지사(왼쪽) 그리고 이윤옥 소장

"강단에 서면 학생들에게 남녀 독립 운동가들을 써보라고 합니다. 유관순을 빼고 쓰라고 하면 여성 독립 운동가들은 단 한 줄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10년이 넘게 상황은 그대롭니다."

지난 21일 만난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은 우리에게 잊혀진 수많은 '유관순'들이 있다며 운을 뗐다.

이 소장은 20여 년 넘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알려왔다.

이 소장은 지난 10년 동안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발굴해 매해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 10권)'라는 전기적 시집도 펴냈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엔 10번째 책을 펴내며 총 2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했다.

시인이던 그가 여성 독립운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소장은 일본어 전공자로 일본에 연구원으로 있던 당시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름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 이후 관심이 생겨 자료를 더 찾아보려고 했지만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삶이 담긴 자료를 찾기는 어려웠다.

이 소장은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 대중을 위해 묻혀 있는 분들의 삶을 소개하는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지 캡션 20년 넘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발굴해 온 이윤옥 소장

같은 운동해도 성별에 따라 서훈 시기 달라

올해 2월 기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1만5180명 중 여성은 357명, 즉 4% 정도에 불과하다.

이유를 묻자 그는 과거 남성 중심의 보훈 정책을 지적하며 "같은 활동을 했어도 남성은 빨리 서훈을 받았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온 식구가 독립군 운동의 뛰어든 오희옥 지사 가족이 대표적인 예다.

"똑같은 업적을 남겼지만 아버지 오광선 지사는 1962년에 서훈을 받고 어머니 정현숙 지사는 33년 뒤인 1995년이 되어서야 인정을 받았어요. 따님 오희옥 지사도 90년대 넘어와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됐고요."

이 소장은 여성은 남성들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해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오늘날과 다르게 '남녀 구분 없이' 뛰어들고 독려했던 것이 독립운동이었다.

여학교를 포함해 학교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펼쳐졌고, 여공들은 인권 유린 현장과 일제의 탄압에 맞섰다.

해녀들은 일제 착취에 맞서 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독립운동과 연결시켰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모은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내놓은 여성 노동자들도 모두 독립투사들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의병대장으로 활동한 윤희순, 장개석이 '한 명의 한국 여인이 1000명의 중국장병보다 우수하다'고 칭찬한 여성 광복군 1호 신정숙 등 손에 무기를 든 여성도 많았다.

이 소장은 한 사람 한 사람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추적할 때마다 현장을 찾는다. 국내를 비롯해 간도, 만주, 하와이 등 해외 지역도 가리지 않았다.

직접 기록을 찾고, 어렵사리 수소문해 후손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여정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홀로 공들여 집필했지만 인기 없는 주제라는 이유로 출판사들은 등을 돌렸다. 결국 자비로 출간해야 했다.

이 소장은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힘들었다. 계속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 주변 사람 중에는 '아직도 그러고 있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생존해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눈빛.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감격해 하는 이들을 보며 이 소장은 이 작업을 끝낼 수 없었다고 했다.

북한의 유관순, 동풍신 열사

그렇다면 3.1절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이 소장이 사람들에게 가장 알리고 싶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누구일까.

그는 한 명만 말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동풍신을 꼽았다.

동풍신은 17살이던 1919년 함경북도 명천 화대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가 1921년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인물이다.

이 소장은 동풍신 열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외친 유관순 열사 논문은 150여 편이고 각종 책도 많습니다. 하지만 동풍신을 다룬 논문은 한 편도 없고 남아있는 내용을 정리해봤자 A4 반장밖에 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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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서대문 형무소 8번방에는 유관순 외에도 노순경 등 여러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영화 '항거'의 한 장면

이 소장은 서대문 형무소 8번 방에는 유관순 외에도 노순경 등 여러 여성독립운동가가 있었던 사실도 기억하자고 했다.

이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먼 후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했던 형무소 동지를 기억하지 않고 있다면...유관순 열사 역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을 거예요."

여성독립운동가 공부하는 일본인

그는 일부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여성 독립운동가들에게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한때 일본 고려 박물관에서 강의 요청을 받고 현장에 갔던 이 소장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50여 명도 채 모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170여 명이 자리에 앉아 있던 것.

이 소장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보여주니 바로 이름을 말했던 일본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1년 넘게 조선 여성독립운동가들 관련해서 공부해온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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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여성독립운동가 강연을 듣고 조선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남긴 일본인들

이윤옥 소장은 앞으로 펼쳐질 100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눈을 돌리자고 독려했다.

"제가 책 제목에 '들꽃'이란 표현을 쓴 이유를 아시나요? 들꽃처럼 드러나진 않았지만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섭니다. 부디 이름만이라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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