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분석심리학의 아버지인 칼 융이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에 미친 영향

  • 마크 사베지
  • BBC 음악 기자
(캡션) BTS는 앨범을 낼 때마다 미국, 영국, 일본 음반 시장까지 흔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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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는 앨범을 낼 때마다 미국, 영국, 일본 음반 시장까지 흔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30년 전에 머리 스타인 박사는 분석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칼 융의 이론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스타인 박사는 나중에 융의 이론들을 정리한 책인 '융의 영혼의 지도'를 썼는데, 당시 그의 책이 2019년 팝 문화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융의 영혼의 지도'는 방탄소년단의 신규 앨범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 제작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인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몇 달 전에 일본계 학생이 내게 ' BTS가 교수님 책을 추천했다고 알려줬다'"며 "당시 BTS가 뭐냐고 물었다"라고 말했다.

스타인 박사는 이후 방탄소년단을 인터넷에 찾아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는 "그런데 한 달 전인가, 같은 학생이 내게 BTS의 새로운 앨범 제목이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라고 얘기해줬다"라며 "그땐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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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리학의 입문 서적으로 알려져 있는 '융의 영혼의 지도'는 BTS 공식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앨범의 제목뿐 아니라 노래 가사에서도 자아, 집단 무의식, 개인 무의식, 페르소나 등 융의 이론을 풀어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페르소나는 극적 의미가 있는데, 라틴어로 배우가 무대 위에 설 때 쓰는 가면이라는 뜻이다. 즉 인간은 공공장소에 나가면 일종의 가면을 쓰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고 스타인 박사는 설명했다.

더 나아가 "사회적 동물의 역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타인과 잘 어울리고 싶어 하고, 예의를 지키며,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어한다"며 이런 문화는 "한국과 일본 같은 동아시아권에서 특히나 중요시된다"라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에서 융의 페르소나 이론에 대한 고찰을 전한다.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RM은 여기서 무대의 페르소나에 갇혀있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찾고 싶다는 갈망을 드러냈다.

뮤직비디오에서 거대한 거울에 둘러싸인 RM은 거울에 비친 페르소나가 자신의 내적 본성을 억누르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스타인 박사는 방탄소년단이 대중 앞에서 사회적 가면을 썼을 때의 모습과 '참된 나'의 괴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며,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대립시키지 않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페르소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개인이 사회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거나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깎아내리는 것이 반복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이 아주 적절한 시기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가수들

리버풀 대학의 엄혜경 박사는 "방탄소년단이 특별한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그들이 한국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이번 앨범의 주제가 이 정도로 주목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구권 사람들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완벽히 인공적일 정도로 가공됐다고 생각해 주체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가수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엄 박사는 "조니 미첼이 '융의 영혼의 지도'를 노래 가사에 참고했다고 상상해보자, 그 자체가 뉴스 헤드라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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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서 방탄소년단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엄 박사는 정태춘과 김광석을 예로 들며, 한국 대중음악에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가수들은 예전부터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지적 수준은 굉장히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진다"라며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이사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것도 재밌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스타인 박사는 이번 방탄소년단의 앨범 때문에 한국 아이돌 세계에 입문했다. 지난 3개월간 방탄소년단 팬들은 노래 가사와 그의 책의 연관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요즘 이것 때문에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며, "나이 75인 내가 요즘 팝 음악을 얼마나 알겠나. 솔직히 내 귀에는 다 시끄럽게만 들린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방탄소년단이 정신 건강에 깊은 이해를 보이는 것을 매우 높이 산다고 말했다.

"래퍼들은 주로 죽음에 대한 고찰이나 폭력적인 갈망을 음악에 많이 담는다고 들었다. 방탄소년단이 음악으로 이렇게 긍정적이고 건강한 이야기를 수백만 명의 팬들에게 전한다는 것이 굉장히 바람직한 것 같다."

빌보드 칼럼니스트인 제프 벤자민은 방탄소년단의 다음 앨범도 융의 이론을 다룬다고 예측했다.

"방탄소년단은 보통 트릴로지(3부작) 형식으로 앨범을 내왔다.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가 맵 오브 더 솔의 첫 번째 장을 장식한 것이라면 다음 앨범은 '그림자'라는 소제목을 달고 조금 더 어두운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앨범은 융의 이론을 살펴보는 기초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스타인 박사는 동의했다.

"다음 앨범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