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테러: 연쇄 폭발 테러 배후에 'IS 개입 가능성 있다'

사진 출처, AFP
수도 콜롬보 소재 성 안토니 가톨릭교회 밖에 모인 사람들
3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리랑카 연쇄 폭발 테러의 배후에 대한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수니파 극단주의단체 이슬람국가(IS)가 23일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외부 개입 있었다'
정부는 애초 스리랑카 현지 극단주의 이슬람조직 NTJ(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를 배후로 지목했다.
하지만 스리랑카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이번 연쇄 폭탄 테러는 국외 테러 단체의 도움 없이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며 외부 개입설을 제기했다.
"내부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AFP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총리가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경찰은 현재 40명 이상의 용의자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현재까지 체포된 이들은 모두 스리랑카 국적이지만 해외 국적 용의자들이 이미 도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보안당국은 해외 세력과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고 몇몇 증거도 발견했습니다."
"따라서 IS가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다면, 그들을 조사할 것입니다."
IS: '미군 주도 국제동맹군과 기독교인 겨냥 공격'
IS 선전매체 아마크는 23일(현지시간) 오후 "IS의 '전사들'이 미군 주도 국제동맹군의 구성원과 기독교인을 겨냥한 공격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후 SNS 성명을 통해 '신성모독 휴일'에 테러를 자행한 8명이라며 이름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IS가 지난 3월 본거지를 잃었지만, 그 영향력이나 신념을 지닌 구성원들이 세계 각 곳에 남아 활동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IS와 NTJ의 연관설을 비롯해 또 다른 이슬람 무장단체 JMI의 연계설도 주장되고 있지만 확실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또 국가적 내분과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정확한 상황 파악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보국의 거대한 참사'
지난 10월부터 스리랑카는 현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놓고 충돌하면서 큰 정치 혼란을 경험했다.
라지타 세나랏네 내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지난 10월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현 스리랑카 대통령이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밀어내고자 마힌다 전 대통령을 신임 총리로 지명하면서, 브리핑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대법원으로부터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다시 자리에 앉히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보안 브리핑에는 참여시키지 않았다.
세나랏네 대변인은 이달 4일 보안기관들로부터 경고성 메모를 받았으며, 이는 국방부가 경찰 수장에게 공격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전달한 후라고 발표했다.
11일에는 관련 정보 부서 수장들에게 해당 문건이 전달됐다.
세나라트네 대변인에 따르면, 해당 문건에는 외국 정보기관이 통보한 특정 단체의 공격 경고와 주요 인물들이 담겨있었다.
시리세나 대통령 또한 사전에 폭탄 경고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는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대통령의 대변인은 "정보국과 경찰 안에서 유포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라고 BBC에 전했다.
사진 출처, AFP
수도 콜롬보 소재 성 안토니 가톨릭교회 밖에 모인 사람들
시리세나 대통령은 대법원 판사를 중심으로 특별 위원회를 출범시켜 이번 사건을 낱낱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계획 장관인 라우프 하킴은 이번 공격을 "정보국의 거대한 참사"라고 칭하며, "너무 부끄러울 따름이다. 국민들을 볼 낯이 없다"라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어떤 나라?
사진 출처, Getty Images
스리랑카는 남아시아 인도 남쪽에 있는 섬나라다.
스리랑카는 인도계 왕조인 촐라왕조, 이를 물리친 폴론나루와 왕조 등이 수 세기간 번성하다 유럽 대항해시대의 영향으로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자치령으로 지정받아 실질적 독립을 이룬 스리랑카는 1972년 국호를 스리랑카로 개명하고 본격적으로 독립 국가의 형태를 갖췄다.
스리랑카의 수도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Sri Jayewardenepura Kotte), 줄여서 '코테'(Kotte)라 부른다.
스리랑카의 행정수도는 콜롬보(Colombo)이며 면적은 6만5610km², 인구는 약 2120만 명이다.
오랜 기간 인도양의 아름다움을 지닌 천혜의 관광지로 유명했던 스리랑카는 길고 험했던 내전으로 기반시설이 많이 망가진 상태다.
1983년 7월 시작된 내전은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2009년 5월 18일 다수 싱할라족의 주축이 된 스리랑카 정부군이 소수 타밀족으로 구성된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반군 토지를 점령하며 종식됐다.
스리랑카의 종교
스리랑카의 주요 종교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다.
기원전 3세기 인도를 거쳐 스리랑카에 들어온 불교 신도의 비율이 약 70%로 가장 높다.
1972년 개헌으로 불교가 공식 국교로 선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슬람, 힌두교, 기독교도들도 적지 않다.
사진 출처, Reuters
신부들이 성 세바스티안 성당 안에서 사건 현장을 둘러보는 경찰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 식민지배 시절 노동력으로서 유입된 북부 타밀족은 앞서 언급했듯 힌두교도가 지배적이다.
또 이슬람교도들은 섬 전역에 산재해있으며 초기 아랍 혹은 인도상인들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기독교도들은 네덜란드 식민통치 시절 크게 번성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