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없어요: '나는 트랜스젠더 수학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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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촬영 편집: 양기모

10년차 수학 강사 이예나씨는 지금까지 가르친 학생만 500명이 넘는다. 지난해 성형수술을 통해 여성의 몸으로 살게 된 트랜스젠더이기도 하다.

이미지 캡션 수술을 통해 외형적으로 여성의 몸이 된 후,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찾았지만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그는 유튜버명 '쌀이없어요'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구독자들은 예나씨를 '쌀언니' '쌀님' 등으로 부른다.

경기도 일산의 한 학원에서 만난 예나씨는 "지금 이 자리가 머리 긴 남자 선생으로 5년간 일했던 곳"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당시 성형수술을 받진 않았지만 호르몬은 오래 맞았던 상태였다는 그는 학부모들로부터 '정체성 문제'를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좋아하는 학원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 나름대로 세운 전략도 있었다.

"수업 중 하루에 한 번씩 '여자친구 만들고 싶다는 얘기하기'였어요. 이게 사실 트랜스젠더랑은 전혀 상관없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아, 여자친구 만들고 싶어하니까 아니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요."

강의 실력 덕분에 학원에서 높은 위치에까지 올라갔지만 여성으로서 내 삶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서는 주변의 시선을 우려해 스스로 학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한테는 트랜스젠더라고 말을 안했어요. 왜냐하면 사춘기잖아요. 잔잔한 물 같은 아이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파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어요.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아이들의 인생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 잔잔함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한테는 그냥 갑상선암이라고 하고 그만뒀죠."

트랜스젠더 수학강사, 현실의 벽

수술을 통해 외형적으로 여성의 몸이 된 후,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찾았지만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학원 취직이 결정돼서 시간표를 짜러 간 적이 있어요. 근데 근처에서 학부모 세 분이 나오셔서 십자가로 때리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엎어진 적이 있어요, 학원 가는 게. 100명의 사람이 있다고 할 때, 한 명이라도 싫다고 하면 그건 굉장히 문제되거든요, 학원에서는. 그때 사실 타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강사 구직은 잠깐 접어놨죠. "

하지만 강의를 하고 싶은 열정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집에 직접 칠판을 사놓고 고등학교 핵심 강의를 찍어 올리기도 하고, 예전에 일했던 학원에 부탁해 새벽에 나가 인터넷 강의를 찍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수업을 해야겠는 거에요. 그래서 인적성 강의를 찍고 고등학교 수학 강의를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어요. 그때는 구독자가 100명도 안 됐어요. 라이브를 하면 세 명 봤어요, 그럼에도 강의를 해야겠는 거에요. 원장님한테 부탁드려서 새벽 2시에 아이들 없을 때 여기 와서는 새벽 4시까지 강의 찍고 가고 그렇게 올렸어요."

유튜브 개인 채널을 통해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후,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찾아와 응원의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 이거였어요. 갑상선암 수술한다고 그만두시더니 안 아파서 다행이라고요. 아이들에게 있어서 제가 트랜스젠더인 것은 그 다음 문제였던 거에요, 그냥 제가 안 아프다고 하니까 그걸 잘 됐다고 하는데 마음이 찡했어요."

가족, 그리고 새 이름

예나 씨는 처음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했던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처럼 울던 부모님을 보는 건 정말 복잡한 마음이었다"고 회상했다.

"예를 들면 제가 십자수나 꽃꽂이 이런 취미가 없어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게 운동이거든요. 농구하고 야구하고 그런 걸 지금도 되게 좋아해요. 그러니까 엄마가 하는 말이 '너는 운동을 진짜 좋아하는 애였다, 여성스럽지 않았다' 그러셨죠. 저는 엄마한테 '그거랑은 별개다, 엄마. 나는 그냥 운동 좋아하는 거다' 그랬죠. 그 설득이 좀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예나씨의 가족은 이제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의 새 이름 '예나' 역시 아버지가 새해 선물로 준 이름이다.

"작년 설날에 세배를 드릴 때 아빠가 해주셨던 덕담이 이거였어요. 새해에는 꼭 예쁜 새 이름 지어주겠다고요. 그리고 올해 설날에 이렇게 이름을 지어서 세뱃돈 봉투에 써서 주셨어요. 근데 이걸 안 쓰려고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라 수호신처럼 그냥 책상에 놓고 보는 겁니다.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나서요."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

Image copyright 이예나 씨 제공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그에게 사람들은 왜 트랜스젠더가 됐냐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고 한다.

"예를 들면 무슨 패배자들, 도태된 자들, 도망자들이 트랜스젠더를 한다는 생각을 머리에 깔고 있는 거죠. 굉장히 무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남자로 살면 인생이 굉장히 편했겠죠. 저도 아쉬워요. 근데 그거는 제가 조건이 그래서 트랜스젠더인 게 아니거든요. 이거는 그냥 제 본질이에요, 본질."

예나씨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공개한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저마다 평범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미디어 등을 통해 '트랜스젠더' 하면 화려한 연예계나 끼를 발산하는 직업을 가질 거라 생각하는데 안 그런 분들 많아요. 다만 안 그런 분들은 자기가 트랜스젠더라고 절대 말 안합니다. 그걸 말하는 순간 내 약점이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트랜스젠더는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이 없구나 생각하는 거예요. 제 주변에만 해도 의사로 일하시는 분, 디자이너로 일하시는 분, 일반 기업에 다니시는 분 등 평범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사는 트랜스젠더 분들이 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저렇게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도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트랜스젠더 수학 강사로서의 꿈

언젠가 공부는 하고 싶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학원을 차리고 싶다는 예나씨. 트랜스젠더 수학 강사로서 그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흔한 통계로 성소수자는 인구의 10%라는 말이 있잖아요. 분명히 지금도 자라나는 트랜스젠더가 있을 것이고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에도 정체성 혼란을 겪는 성소수자들이 존재할 거에요. 그런 아이들, 또 부모님들을 위한 상담자도 되고 싶어요."

"사실 커밍아웃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지거나 산산조각나는 가정들이 되게 많거든요. 제가 직접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만, 상담자 역할을 하면서 다른 부모님들의 자녀를 가정에서 지켜주는 그런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게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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