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들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여성'이다?

(캡션) 북한은 30일 노동신문 논설을 통해 "우리 여성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여성들"이라고 주장했다 Image copyright ED JONES

북한은 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을 제정, 공포했다.

법 제도를 통해 봉건사회의 첩 제도를 없앴고 토지 개혁으로 몰수한 토지를 여성에게도 무상으로 분배해주었다.

남녀평등권법령 공포 73주년인 30일, 북한 매체들은 법령 공포로 "이 땅에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 마지 않는 '여성들의 천국'이 펼쳐졌다"며 "조선 여성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여성들"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법령과 현실은 다르다. 유엔 인권이사회(UNHCR)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북한 여성에 대한 폭력 등 인권 유린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지난해에는 휴먼라이츠워치가 북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여성들의 천국'

노동신문은 이날 '우리 여성들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힘 있는 역량이다'라는 제목의 논설을 1면에 게재했다.

논설은 "수레가 한쪽 바퀴로만 굴러갈 수 없듯이 남성들의 힘만으로는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세계의 많은 나라에선 (중략) 가정과 사회를 아름답게 가꿔야할 여성들이 패륜패덕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졌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 천시가 지배하고 있다"고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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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머니 조국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값높은 삶을 꽃피워가는 조선 여성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여성들"이라고 주장했다.

대외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 역시 "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 공포로 조선여성들은 극적인 운명전환을 맞이하여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았고 이 땅에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 마지 않는 '여성들의 천국'이 펼쳐졌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외교 무대에 나온 후, 북한 여성 관료들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현송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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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외교 무대뿐 아니라 무역에서도 경영 경험이 있는 '장마당 여성'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 어쩔 수 없이 많은 북한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게 됐고, 현재 400여 개의 장마당을 주도하고 있는 것 역시 여성이다.

하지만 김여정, 현송월과 같은 여성은 일부 엘리트 여성일 뿐이고, 여성이 장마당에 나오면서 성폭력에 더 노출된다는 주장도 있다.

여전히 북한 남성은 고전적인 여성의 역할을 요구하고, 이로 인해 상당수 탈북 남성은 여성의 높아진 위상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알려졌다.

"현실은 전혀 아니다"

"북한 여성이 따라 배워야 하는 여성 둘이 있다. 바로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과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이다."

20년 넘게 북한 여성을 연구해 온 임순희 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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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김일성 가족사진

그들이 북한 여성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역할을 잘해냈기 때문이다. "북한 여성이 지켜야 할 덕목은 남편 잘 모시는 것, 아들을 혁명가로 잘 키우는 것, 그리고 자신도 혁명가로서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임 연구위원은 "법 제도화는 했다. 법령만 보면 남녀평등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시대부터 뿌리 깊었던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한국 여성들은 이를 자각해서 저항했지만 북한 여성들은 자각할 기회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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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유엔회원국으로서 2001년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도 가입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조영주 교수는 지난해 열린 '여성과 분단체제의 안과 밖' 포럼에서 이를 북한이 자신들은 '정상국가'이고 국제적 규범에 맞게 여성인권을 보장하고 있음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2010년 '조선인민주의인민공화국 녀성권리보장법'을 제정하고 발표했지만, 이는 "실질적인 북한여성의 모습을 비가시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쁘게 키워놓은 딸자식'

북한이 봉건주의적인 남녀 질서를 없애고자 했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중앙당 5과 대상'이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지난해 5월 펴낸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이를 조선시대 '궁녀 조직'과도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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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는 14~16세 사이의 여학생을 까다롭게 선발해 음악, 예술, 간호, 경호, 통신 등 분야 교육을 시켜 호위사령부나 봉화병원 등에 파견하는 제도다.

외모가 출중하면 김일성 가문의 간호원, 경호원, 전화수, 타자수, 심지어 기쁨조로 일한다.

'장마당 여성'의 등장

북한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인권을 논함에 있어 '장마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95년부터 시작된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국가는 중앙배급제를 중단했고 북한 사람들은 각자 살아남아야 했다.

남성들은 노동에서 이탈 시 처벌되기 때문에 배급이 지급되지 않아도 일터를 지켜야 했고 여성들이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2016년 기준 400여 개에 달한다고 알려진 장마당을 주도하는 것도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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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조선익스체인지는 여성 사업가를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해왔다

흔히 경제력을 쥐고 있으면 권력이 생길 것으로 생각하지만 장마당과 북한 여성 지위와 인권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발간되는 '한반도 포커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북한 여성이 주요 경제주체가 되어 "결혼 시기를 조금씩 늦추거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배우자를 선호하고 좀 더 평등한 가사분담을 요구하는 등 기존의 가부장제 가치관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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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평양 시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이혼하는 풍조도 생겼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장마당에서 음식을 위주로 장사하다 2010년에 탈북한 50대 초반 강미진 씨는 BBC 코리아에 "여성이 좀 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여성들이 수십 년간 경제권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에 경영에 대해서는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향후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정은 옳지 않다'

지난해 11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북한 내 성폭력 실상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특히 장마당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관리로 일했던 8명의 탈북민을 포함해 54명의 탈북민을 인터뷰한 "이유 없이 밤에 눈물이 나요: 북한의 성폭력 실상"이라는 보고서에는 북한의 계획경제 아래에 장사는 불법이기 때문에 장사하는 여성들이 관리와 간부들에게 뇌물 주는 것이 만연하다고 나와있다. '뇌물'에는 성행위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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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탈북 웹툰작가 최성국 씨가 그린 장마당 모습

조영주 교수도 "시장을 관리하는 이들은 주로 남성이며 출신성분이나 집안 배경이 좋은 이들"이라는 점을 짚으며 "기존 북한 사회의 젠더 질서를 균열시키는 데 제약을 주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순희 전 연구위원 역시 부정적인 영향에 주목했다. "장사를 하려면 지역을 이동해야 하는데 북한에는 지역 이동의 자유가 없다. 여성들은 스스로 꾀를 내야 했다. 뇌물도 바치고 나아가 성 상납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마당을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을지는 몰라도 "바람직하지 못한 과정을 겪었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를 이론으로 배우지도 못했고 장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뇌물 많이 활용했고 성폭력 시달렸다"고 말했다.

가정파괴와 탈북

여성이 시장 활동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초래한 또 다른 사회 현상은 '가정 파괴'와 '탈북'이다.

장사를 위해 북한 여성은 중국도 오가게 됐다. 개혁·개방된 중국에서 자신들이 알던 것과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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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리설주 여사가 김정은 위원장의 서류 가방과 안경으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다

임 연구위원은 "시장 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사회를 보는 눈, 남성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 경우 남편들이 여성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가정폭력이 심해진 때도 있다. 이혼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우 돈을 벌기 위해 자진해 중국에 시집을 가거나 브로커를 통해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했다.

북한 여성은 중국을 오가다 중국에 안착하는 경우도 있으며 탈북하는 경우도 많다.

2017년 12월 기준 탈북자 중 여성은 72%를 차지했다. 매해 탈북자 중 여성이 70~80%를 유지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편, 한 연구는 북한 이탈 여성의 이미지가 한국 결혼시장에서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일연구원 김수경 부연구위원은 결혼정보업체들의 웹사이트를 분석해 지난해 '결혼시장에서 북한 이탈 여성의 이미지 재현 연구' 보고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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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안성 하나원에서 공중전화를 쓰는 탈북민들

그는 업체들이 탈북 여성이 "가부장제에 순종적인데 정작 자유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 만큼 용맹하다"는 이미지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남편을 하늘처럼 모신다' '마음이 따뜻하고 내조를 잘한다'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절대 가족을 포기하지 않아서 이혼율도 낮다' 등의 홍보 문구로 수동적, 의존적, 순종적인 존재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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