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법칙: 소수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의 입법을 막기 위해 시작된 대규모 집회 Image copyright AFP
이미지 캡션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의 입법을 막기 위해 시작된 대규모 집회

지난 6월 홍콩에서 하나의 저항이 일어났다. 대체로 평화적으로 진행된 이 시위는 논란이 많았던 송환법의 유예를 끌어냈다. 송환법은 정치적 반체제 인사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아왔다.

이후, 좌절과 분노가 누적된 일부 시위대가 홍콩 의회인 입법회 청사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했다. 기존 시위의 주류와 다른 행동이었다. 진압과정에서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했다.

혼돈 양상도 있었지만, 홍콩 시위는 대부분 비폭력으로 진행됐다.

시위대는 구속된 시위대 석방, 경찰의 폭력 의혹 조사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들은 어떤 기회를 통해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아마도 저항을 하는 이들의 숫자와 저항 방식에 달려있을지 모른다.

비폭력 투쟁

1986년 필리핀 국민 수백만 명이 마닐라 거리로 나와 평화 시위와 비폭력 투쟁 운동의 기도에 참여했다. 시위 나흘째 마르코스 정권은 21년째 쥐고 있던 권력을 내려놓았다.

2003년 조지아 국민들은 무혈 장미 혁명을 통해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를 몰아냈다. 이 시위에서는 시위대가 꽃을 들고 의회 건물을 급습했다.

올해 초 수단과 알제리에서도 대통령들이 평화로운 저항 운동 앞에서 수십 년간의 집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모두 일반 대중의 시민적 저항이 정치 엘리트들을 꺾고 급진적 변화를 얻어낸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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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86년 필리핀 국민 수백만 명이 마닐라 거리로 나와 평화 시위와 비폭력 투쟁 운동의 기도에 참여했다

비폭력 전략은 여러 윤리적인 이유로 사용된다. 그런데 하버드대 정치학자인 에리카 체노웨스의 흥미로운 연구는 시민의 불복종이 단지 도덕적 선택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정치를 만들어가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체노웨스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일어난 수백 건의 저항운동을 살펴봤다. 그리고 비폭력 저항운동의 성공이 폭력적인 저항운동보다 두배 더 많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성공의 정확한 원동력은 많은 요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녀는 인구의 약 3.5%가 저항운동에 참여하면 거대한 정치적 변화가 보장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체노웨스의 영향력은 최근 영국의 기후 변화 운동단체 '멸종 저항'의 시위에서도 확인된다. 이 단체를 만든 이들은 그녀의 연구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어떻게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기나긴 역사

말할 필요도 없이, 체노웨스의 연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예제 폐지론자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저너 트루스, 참정권 운동가 수잔 B 앤서니, 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모두 평화 시위가 가진 힘을 역설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체노웨스가 2000년대 중반 연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그녀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비폭력 저항이 무장 갈등보다 더 강력하다는 생각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콜로라도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면서, 그녀는 몇 년간 테러리즘의 발생에 이바지하는 요인들을 연구했다. 그러던 중 워싱턴DC에 있는 비영리기관 국제 비폭력 갈등 센터(the International Center of Nonviolent Conflict, ICNC)가 주최하는 학술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는 필리핀의 '피플 파워' 운동처럼 정치적 변화를 가져온 평화 시위 사례들이 소개됐다.

체노웨스는 "그 누구도 비폭력과 폭력 시위의 성공률을 포괄적으로 비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라면서, "사례 연구가 있기는 하지만, 특정한 확증 편향에 따라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사회의 주요한 변혁을 이끄는 데 있어서 비폭력 시위가 정말 중요할까'라는 생각이 연구의 동기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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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평화 시위는 20년째 정권을 장악한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냈다

한 세기에 걸친 사례

체노웨스는 ICNC 연구원인 마리아 스테판과 함께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시민의 저항과 사회 운동에 대해 다룬 저작물들을 상세하게 검토했다. 이는 이 분야의 다른 전문가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다.

이들은 정권을 교체하려는 시도에 주목했다. 저항 운동으로 인해 즉시 정권이 바뀌거나 참여가 정점을 찍은 후 1년 이내에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성공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외국 군대가 개입해서 정권이 교체된 경우는 성공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사회운동이 폭탄테러, 유괴, 사회적 생산기반 파괴나 사람과 재산에 다른 물리적 피해를 일으켰을 때는 폭력 시위로 분류했다.

체노웨스는 "우리는 전략으로서의 비폭력 시위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했다"라고 말했다.

기준은 엄격하다 보니, 인도 독립운동은 비폭력 시위 사례가 되지 못했다. 시위의 영향력이 컸지만, 영국의 군사 자원 축소가 결정적 요인으로 고려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폭력・비폭력을 아우른 총 323개의 시민운동 자료를 확보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고, 이는 '왜 시민의 저항이 효과적인가: 비폭력 갈등의 전략적 논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숫자의 강점

전체적으로 비폭력 사회 운동의 성공률이 폭력 운동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비폭력 사회 운동의 53%가 정치적 변화를 가져온 것에 비해, 폭력은 26%에 그쳤다.

부분적으로 숫자의 강점이 영향을 끼쳤다. 체노웨스는 비폭력 사회운동이 더 폭넓고 많은 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 성공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참여의 폭이 커지면 정상적인 도시 생활과 사회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의 심각한 파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연구한 25개의 거대 사회운동 중 20개가 비폭력이었다. 그리고 이 중 14개는 완벽히 성공했다. 비폭력 사회운동에는 평균적으로 약 20만 명이 참여했다. 폭력적 사회운동(5만명)보다 4배 정도 많은 숫자다.

예를 들면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정권에 맞선 '피플 파워' 운동은 절정기 참여 인원이 200만 명이었다. 1984년과 1985년의 브라질 폭동은 100만 명,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은 50만 명의 참여를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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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절정기에 인구의 3.5%가 참여한 운동 중 실패한 사회운동은 없다

체노웨스는 "숫자라는 건 짓누르고 있는 권력층과 점령군을 도전하는 힘을 만들 때 정말 중요하다"라며 "이 과정에서 비폭력 운동은 지지의 폭을 넓히는 데 있어 최고의 방법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일단 전 인구의 3.5%가 저항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면 성공은 불가피한 것이 된다.

체노웨스는 "(저항 운동이) 절정기에 인구의 3.5%가 참여한 것 중 실패한 사회운동은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를 "3.5% 법칙"이라고 불렀다. 1980년대 에스토니아의 노래 혁명, 조지아의 2003년 장미 혁명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비폭력 시위는 왜 성공했을까?

처음에는 체노웨스도 연구 결과에 놀랐다. 그러나 지금은 이처럼 높은 수준의 지지를 비폭력 시위가 얻을 수 있는 여러 원인을 제시한다.

아마도 가장 분명한 건 폭력 시위가 유혈사태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배제한다는 점이다. 반면 평화 시위자들은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비폭력 시위는 참여하기 위한 장애물이 적다는 중요하다.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몸이 좋거나 건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폭력적인 사회 운동은 육체적으로 튼튼한 젊은 남성들의 참여가 중심을 이뤄야 한다.

물론 많은 비폭력 시위도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때의 중국 정부의 대응이 그 예다. 체노웨스는 일반적으로 비폭력 시위는 공개적인 토론이 가능해서, 비폭력 시위가 벌어졌다는 뉴스가 더 많은 이들에게 도달하기 쉽다고 말했다.

반면 폭력적인 저항운동은 무기를 갖춰야 한다. 또한 더욱 비밀스러운 활동을 펼쳐야 해서 일반 대중에게 도달하기가 어렵다.

인구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지가 형성되면, 경찰이나 군대의 지지도 얻기 쉽다. 정부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기대야 하는 바로 그 집단이다.

경찰이나 군인들도 수백만 명의 평화로운 거리 시위를 진압하면서 그 안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을 것을 염려할 수 있다. 그들이 저항 운동을 단호하게 진압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체노웨스는 "이 밖에도 그들은 참여자 수만 보고 결론을 예상할 수 있다"며 "가라앉는 배와 함께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전략적 측면에서 파업은 "가장 강력하진 않아도 가장 힘이 센 단일 비폭력 저항 방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어난 불매운동을 예로 들었다. 당시 많은 흑인 시민들이 백인들이 소유한 회사 제품 구매를 거부했다. 결과는 국가의 백인 엘리트층의 경제적 위기로 이어졌고, 이는 1990년대 초반의 분리 정책 종식에 이바지했다.

체노웨스는 "무장 시위와 비교해보면 참여자 수가 늘수록 물리적 위험을 크게 감수하지 않고서도 비폭력 저항 운동에 참여하는 방식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비폭력 저항의 운동 방식은 더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도 쉽고, 최대의 파열을 만들어 내기 위해 활동을 조직하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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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사회 운동가들은 체노웨스의 연구를 참고해 전략을 짜고 있다

매직 넘버?

물론 평화 시위 중에도 실패 사례가 47% 정도 있다. 체노웨스와 스테판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상대의 힘의 기반을 파괴하고 억압을 받아도 회복할 만큼 충분한 지지나 기세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규모가 꽤 큰 일부 비폭력 저항운동도 실패했다. 1950년대 동독의 공산당 반대 시위는 절정기에 40만 명(인구의 약 2%)가 참여했지만,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

체노웨스의 자료 안에서는 비폭력 저항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이 인구의 3.5% 문턱을 넘었을 때만 성공이 보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만큼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 230만 명이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어림잡아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버밍엄의 두 배 정도 크기다). 미국에서는 뉴욕의 전체 인구보다 많은 1100만 명이 참여했다.

이러한 참여를 끌어내는데 유일하게 신뢰할 방법이 비폭력 사회운동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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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사회 운동 영역에서 비폭력 방법이 폭력적인 것보다 성공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체노웨스와 스테판의 연구는 2011년에 처음 출간됐다. 이 연구는 이후 커다란 관심을 받았다. 인디애나주 노터데임 대학에서 시민 저항운동을 연구하는 메튜 챈들러는 "이 연구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코펜하겐 대학에서 국제 갈등을 연구하는 이사벨 브람센도 체노웨스와 스테판의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녀는 "비폭력 방법이 폭력적인 것보다 성공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은 이 분야에 진실로 자리 잡았다"라고 말했다.

"3.5% 법칙"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3.5%는 소수이지만, 적극적인 참여 수준이 그렇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이 저항 운동이 가진 이상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 밖의 요인들

연구자들은 사회 운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들을 더 밝히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람센과 챈들러는 시위자들 가운데 단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브람센은 처음에는 많은 항의자가 참여했지만 이내 경쟁 분파로 쪼개진 2011년 바레인 폭동 실패를 예로 들었다. 브람센은 응집력 손실이 결국 사회운동이 변화를 끌어낼 만큼 충분한 추진력을 얻어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체노웨스는 최근 2017년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the Black Lives Matter movement)와 여성 행진(the Women's March)처럼 미국의 저항운동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아울러 최근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참여로 인지도가 올라가 멸종 저항도 눈여겨보고 있다.

그녀는 "그들은 많은 관성에 맞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정말 사려 깊고 핵심적인 전략을 쓰고 있다. 그리고 비폭력 저항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올바른 직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나중에는 비폭력 사회운동에 더 큰 초점을 둔 역사 기술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녀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역사의 상당수가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비록 역사가 총체적인 재앙일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승리를 발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단히 영웅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이것이 세상을 바꾼다. 이들에 주목하고 이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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