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 양육비 미지급 부모들 명단 공개로 국민참여 재판서는 '배드파더스' 구본창 씨

구본창 씨는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로 외부와 소통을 맡고 있다
이미지 캡션 구본창 씨는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로 외부와 소통을 맡고 있다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는 명예훼손일까.

'배드파더스' 사건이 14일 국민 참여재판을 앞두고 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아빠와 엄마들의 신상을 웹사이트에 올려 법적 강제력이 없는 양육비 제도의 허점을 알려왔다.

구본창 씨는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 운영진을 대신해 외부와 소통을 맡고 있다.

신상이 공개된 부모 중 5명(남성 3명, 여성 2명)이 홈페이지 운영을 돕는 구본창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검찰은 2019년 5월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 점 등을 문제 삼아 벌금 300만 원에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은 사건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고소를 당하고 수십 번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스스로 자원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구 씨를 지난 3일 만났다.

10명 중 8명은 양육비 못 받는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땐 이렇게 계속 고소당하리라곤 완전히 예측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멈추면 이 사이트는 멈춰버리게 돼 잖아요"

구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이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현행법으로는 전 배우자를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청자가 여러 번 상담하고 용기를 내 배우자 신상을 등록했다가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구 씨는 신청자 중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거나, 폭력을 당하거나, 겁이 나 중간에 내려달라고 요청한 이들이 많다고 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집계한 양육비 이행률은 2018년 기준 32.3% 정도다.

지난해 4월 여성가족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양육자 10명 중 8명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법원 판결문이나 합의서에 명시된 양육비는 강제성이 없다.

양육비 청구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내려도 전 배우자가 주지 않겠다고 버티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총연합회에 따르면,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받는 피해 아동은 100만 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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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진과 간단한 인적사항을 공개하고 있다

2018년 7월 설립된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등록된 400여 명 중, 현재까지 113명의 양육비 문제가 해결됐다.

배드파더스는 실제 미지급 상황, 법률이 정한 구제 절차 수행 여부, 양육비 확정 판결문 등을 확인한 후 신상을 공개한다. 양육비 지급이 확인되면 리스트에서 지운다.

구 씨는 이곳에 올라온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의도적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양육비 500만 원을 4년 동안 주지 않았던 대형 로펌 변호사가 있었어요. 양육자인 엄마가 1인 시위도 했지만 경찰에 의해 영업방해로 끌려나가야 했죠. 결국 배드파더스에 신상을 제보하겠다고 하니까 전남편이 미뤄온 양육비를 바로 해결해줬어요. 그저 월급 3개월 치였으니까요"

이 외에도 유명 야구선수 출신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이곳에 공개되면서 양육비가 지급됐던 사례가 있었다.

구 씨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이는 양육비 문제를 '아이의 생존권' 문제로 보지 않고, 남녀 사이의 '개인적 문제'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 사람들 입장은 간단하게 왜 남의 가정사에 껴들어서 내 사진을 동의도 없이 올리느냐 이거죠."

그는 종종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폭언이나 협박도 듣는다.

"하루는 전화를 받았는데 내용을 들어보니까 유흥업소를 하는 조폭이더라고요. 사진 안 내리면 칼 잘 쓰는 동생 보낼 거라고 하더라고요. 되게 열도 받고 스트레스도 받고 겁도 나죠. 가족들도 이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안 하면 사이트를 닫아야 하니 계속해야죠."

'코피노 맘'

구 씨는 원래 잘 나가던 영어강사 출신으로 입시학원 원장이었다.

12년간 학원업에 종사하며 기러기 아빠였던 그는 지난 2012년 두 딸이 유학 중이던 필리핀에 갔다가 우연히 한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상이에서 태어난 자녀) 맘'의 비참한 현실을 알게 됐다.

한국인 유학생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은 필리핀 여성은 한국에서 결혼 허락받고 돌아오겠다는 남성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성은 떠나며 한국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남겼다. 여성은 구 씨에게 쪽지를 전하며 부디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쪽지엔 알파벳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Geugeol Mitni(그걸 믿니) 18, Korea'

그렇게 한 여성과 그 가족이 무너지는 걸 목격한 구 씨는 코피노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그 뒤로 그는 2016년 코피노 아버지의 신상을 공개하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제가 거기에서 'WLK(We Love Kopino)'라는 단체를 설립해서 코피노 양육비 소송도 담당했어요. 그런데 소송을 하다 보니 분명히 한국법원에서 양육비 판결을 받았는데 돈을 못 받고 있다는 거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했더니, 글쎄, 한국 상황은 더 심하다는 말을 듣게 됐어요."

한국의 실정이 바뀌어야 코피노들의 실정도 함께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구 씨는 배드파더스 일에도 함께하게 됐다.

'제도 없이 인식개선은 무의미'

구 씨 역시 사이트에 신상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답답해했다. 양육비 문제는 근본적으로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양육비 지급 문제가 아동학대로 연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입니다. 외국 같은 경우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운전면허를 취소하거나, 여권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고요. 의사나 변호사인 경우 각종 해당 면허를 취소하는 국가도 있어요."

실제로 미국의 경우 양육비를 체납하면 여권 발급을 거부하며 이를 형사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캐나다도 여권과 각종 면허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은행 계좌, 부동산 압류 등의 방법으로 국가가 양육비를 회수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인식개선을 먼저 말하지만 제도가 바뀌어야 인식도 같이 따라오는 겁니다. 예를 들어 20년 전만 해도 기차에서 담배를 피웠어요. 그때 간접흡연이 나쁘다고 이야기해봐야 소용없었어요. 그런데 제도가 바뀌니까 이제 바뀌었잖아요. 제도 없이 인식개선은 무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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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지난 해 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양육비제도 진정입법 부작위 헌법소원 기자회견'에서 어린이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양육비해결모임은 헌법재판소에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존권인 기본권 침해'로 사상 첫 양육비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접수했다

14일 국민참여재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명단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관련 명예훼손재판이 14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다.

구 씨는 14일 재판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예측불가'라고 답변했다.

현재 구 씨는 정보통신망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번 재판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경우 끝까지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제가 살아보니까 배고픈 게 제일 고통스러운 거예요. 필리핀에서는 코피노 아이들이 양육비를 못 받아서 굶어요. 한국에서도 정말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고요. 제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예요. 법이 바뀌어서 한국과 필리핀 아이들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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