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왕자: 파티를 즐기던 왕자, 자신의 길을 개척하다

2019년 4월 해리 왕자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서식스 공작(해리 왕자의 공식 작위)은 늘 언론의 주목 속에서 살아왔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어린 시절부터 파티를 즐기던 10대, 군대에 있을 때도 언론의 관심은 그를 따라다녔다.

군에서 나온 후 해리 왕자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자선 활동을 했다. 결혼도 했고, 아버지가 됐다.

그런 해리 왕자가 이제 아내와 함께 인생의 새 장을 열려 하고 있다. 왕실의 의무와 "전하"라는 칭호를 비롯해 공적 지원을 포기한 것. 그리고 여생의 대부분을 캐나다에서 보내리라 예상된다.

해리 왕자는 공적인 삶과 사적인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 해왔다. 왕위 계승 서열 6위라는 점은 자선 활동에 대한 지지를 얻을 때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에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할 때도 있었다.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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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웨일스 공작 부부(찰스 왕세자-다이애나 왕세자비) 사이에서 해리 왕자는 1984년 태어났다

왕자는 1984년 9월 15일 패딩턴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해 12월 윈저에 있는 세인트 조지 성당의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하지만 해리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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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헨리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해리라는 이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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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해리-윌리엄 형제

왕자의 어린 시절은 1997년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으로 갑자기 끝났다.

어머니는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을 따돌리다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서른여섯 살 때 일이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왕실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열두 살 해리 왕자와 열다섯 살 윌리엄 왕자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추모 예배를 위해 두 왕자가 어머니의 영구차를 뒤따르던 장례식 장면은 BBC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프로그램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미지 캡션 다이애나의 운구식에서 아버지와 형 사이에 해리 왕자가 서 있다

해리 왕자는 2017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를 잃은 열두 살 때부터 지난 20년 동안 모든 감정을 닫아버렸다"며 "그 일이 개인의 삶에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슬픔과 거짓말, 오해가 전방위적으로 닥치면서 모든 일이 완전히 붕괴될 지경이었다"고 덧붙였다.

해리 왕자는 웨더비 스쿨에 다니는 형을 따라 1998년 이튼에 들어갔다. 이튼에서 2개의 "A 레벨 시험"을 통과한 왕자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1년간 안식년인 "갭 이어(gap year)"를 가졌다.

해리 왕자는 양을 치는 호주의 목장에서 일했다. 레소토에서 에이즈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한 일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그가 세운 자선단체의 모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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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5살 학교 입학 당시 해리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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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이튼 스쿨에 입학하는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는 3년 뒤 같은 학교에 들어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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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찰스 왕세자는 형제와 함께 스위스로 스키 여행을 갔다

언론은 해리 왕자의 삶을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지금은 폐간된 '뉴스 오브 더 월드'의 2002년판 1면 헤드라인은 "해리의 마약"이었다. 기사는 찰스 왕세자가 대마초를 피운 해리 왕자를 재활병원에 보냈다는 주장을 실었다.

세인트 제임스 궁 측은 당시 열일곱 살이던 왕자가 "몇 차례에 걸쳐 마약을 투여했다"면서도 "정기적으로" 복용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2004년 10월에는 클럽 주변에서 사진기자와 난투극을 벌였다. 왕실 대변인은 "사진기자들이 주변에 몰려들었을 때" 그가 카메라에 얼굴을 맞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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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갭 이어 동안 해리 왕자는 남아공의 한 고아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대변인은 해리 왕자가 카메라를 밀쳐낼 때 "사진기자의 입술이 찢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듬해에는 한 파티에 나치 복장을 하고 나타나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다.

이후 왕실 측은 왕자가 "불편함과 당혹감을 일으킨 것"에 사과했고, "형편없는 의상선택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해명했다.

2009년에는 해리 왕자가 자신의 소대에 있는 아시아 출신 병사에게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동영상이 등장했다.

세인트 제임스 궁은 왕자가 "자신의 말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모욕감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왕자는 "악의없이 한 말이고 소대에서 아주 인기 있는 소대원에게 별명으로 사용한 단어"라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올림픽 홍보대사 역할을 맡아 긍정적인 뉘앙스로 언론에 회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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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2 런던 올림픽 홍보대사였던 해리 왕자

그해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 행사도 있었다. 그는 이 행사를 위해 카메라 앞에 자주 나섰고, 왕실을 대표해 벨리즈, 바하마, 브라질, 자메이카를 순방했다.

하지만 그해 8월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방에서 젊은 여성과 나체 상태로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미국의 가십 사이트인 TMZ가 최초 보도한 후 '더 선'에도 실린 이 두 장의 사진은 친구들과 휴식을 취하던 중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매체는 해리 왕자가 당시 "옷 벗기 당구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훗날 그는 "내 스스로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적인 공간에 있었고, 누구나 사생활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왕위 계승자의 동생이다. 비교적 책임이 적은 자리다.

여왕의 동생인 마거릿 공주나 찰스 왕세자의 동생들처럼 해리는 "왕위 계승 예비자"다. 왕좌에 가까이 있는 게 아니라,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이다.

그래서 해리 왕자가 무분별한 행동에도, 그에 대한 여론은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상황 때문에 더욱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형 제임스 왕자였다면, 아프가니스탄으로의 파병은 어려웠을 것이다.

입대와 자선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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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아프간에서 아파치 헬기 파일럿으로 복무한 해리 왕자

해리 왕자는 군대에서 10년을 보냈다. 전쟁 지역에서 왕족이 군 복무를 한 것은 25년 만의 일이다.

그는 2007년 이라크에 파병되기를 희망했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라는 이유로, 군 지휘관이 불허하자 실망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0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10주간 복무했다.

2012년 9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아파치 헬리콥터를 조종했고, 2013년 7월 아파치 사령관 자격을 얻었다.

훗날 그는 탈레반과 벌인 전투에 대해 털어놓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그런 일이 "평범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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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해리 왕자은 전역이 "매우 힘든 결정"이라고 말했다

2015년 그는 군대를 떠났다. 그는 군에서 보낸 시간이 "평생 나와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정신 건강에 초점을 맞춰 퇴역 군인을 돕는 그의 자선 사업에 군 경험이 반영됐다.

해리 왕자의 자선 사업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2014년 인빅터스 게임을 창설하고 의장을 맡은 것이다.

인빅터스 게임은 상이군인이 참가하는 패럴림픽 같은 국제 대회다. 런던, 올랜도, 토론토, 시드니에서 개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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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해리 왕자는 인빅터스 게임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또 부상당한 퇴역 군인들을 위한 '워킹 위드 더 와운디드(Walking With the Wounded)'라는 자선 단체도 후원했다. 이와 함께 아프리카 보존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고아를 돕는 자선단체 센터베일을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했던 일도 이어갔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을 돕고, 지뢰를 제거하는 '헤일로 트러스트'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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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On his visit to Angola in September, Harry said landmines are "an unhealed scar of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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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다양한 자선단체 활동에서 함께한 두 형제

그의 어머니는 1997년 앙골라 중심부에서 지뢰밭을 걸어 들어가는 모습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그해 말 전쟁 무기를 불법화하기 위한 국제 조약 서명 등 자신이 헌신해온 결과를 보지 못하고 파리에서 사망했다. 2019년 9월 해리 왕자는 어머니의 발자취를 되짚으며 어머니의 업적을 강조했다.

오명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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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7년 헤즈 투게더 행사에 참가한 윌리엄 왕자 부부와 해리 왕자

어머니의 죽음에서 온 상처로 해리 왕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상담을 받았다.

그는 2011년 4월 형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서 신랑의 들러리를 맡았다. 그 당시, 그는 결혼식에 어머니가 없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진솔한 인터뷰에서 그는 20년 가까이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닫아버리고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이 그의 개인적인 생활과 일에 "꽤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수많은 일"이 무너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머니와의 마지막 통화를 짧게 끝낸 것을 "평생 후회한다"고 했고, 어머니의 "재밌었던" 양육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어머니가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아이"같았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윌리엄 왕자, 케임브리지 공작부인(케이트 미들턴)과 힘을 합쳐 정신 건강 관련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새로운 지원 서비스에 대한 자금을 모으고 오명에 맞서기 위한 자선단체 '헤즈 투게더(Heads Together)를 설립했다.

'아름다운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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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7년 인빅터스 게임에서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결혼 전 해리 왕자의 연애 생활은 커다란 관심사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싱글남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말 그는 메건 마클과의 연인 관계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자신의 연인을 괴롭히는 언론인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는 "지면에서 모욕적인 기사를 빼기 위해서 매일 벌이는 법적 투쟁"이나 집으로 침입하려는 기자들, 메건의 친구들을 향한 "폭격" 등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친구들의 소개로 만났다. 두 번의 데이트 후, 그들은 보츠와나에서 함께 휴가를 보냈다.

결혼을 앞둔 2017년 9월 메건은 베니티 페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해리 왕자는 "사랑에 빠져 정말 행복한 두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약혼이 발표된 11월의 인터뷰에서, 해리는 소개를 받기 전까지 메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만남 후에 "아름다운 놀라움"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는 어머니의 보석 컬렉션에서 다이아몬드 2개를 가져다 메건과의 약혼 반지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2018년 5월 윈저에 있는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서식스 공작과 서식스 공작부인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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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0월 16일간의 호주 여행에서 두 사람은 첫 아이를 가졌다고 발표했다. 당시 부부는 "개인에게 일어난 기쁜 일"을 알리게 되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해리 왕자가 "우리의 작은 기쁨 보따리"라고 표현한 아치는 2019년 5월 6일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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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해리 왕자는 아치를 출산하고 "매우 감격했다"라고 말했다

다음 장

부부의 지난 1년은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였다.

지난 3월 부부는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과 사무실을 분리했다.

4월에는 서식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기록적인 기간(5시간 45분) 만에 팔로워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부모가 되는 기쁨을 누린지 며칠 만에 코츠월드에 있는 자신의 집을 촬영한 파라라치 에이전시에게 피해를 입고 사과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부부는 지난해 6월 형 부부와 함께하던 자선단체와 분리를 선언했다. 이로써 해리 왕자와 윌리엄 왕자 부부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9월 말에는 열흘간의 아프리카 투어를 순조롭게 마쳤다.

해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자각을 높였고, 아들 아치를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메건은 자신의 사적 편지를 불법적으로 공개했다며 '메일 온 선데이'를 법적 조치 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리 왕자는 장문의 성명에서 언론이 아프리카 투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보도를 하면서, 지난 9달 동안 거의 매일 메건을 향해선 비난해왔다며, "이중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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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해리 왕자 부부는 2019년 9월 10일 동안 아프리카 투어를 다녀왔다

투어 중에 촬영해 다음 달 방송이 예정된 ITV 다큐멘터리에서 매건은 왕실의 삶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다고 했고, 해리 왕자는 자신의 정신 건강에 "지속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의 자선 사업은 분명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버킹엄 궁은 해리 왕자 부부가 "사적인 후원과 협회 업무"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가족이 정확히 어디에서 살 것인지 등 앞날에 관한 전망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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