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민해서' 힘들고 우울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조언

  • 김효정
  • BBC 코리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이자 우울증 전문가로 꼽히는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

사진 출처,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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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심리부검센터장이자 우울증 전문가로 꼽히는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

예리함과 예민함. 한 글자 차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는 디테일을 파악하는 능력이지만, 다른 하나는 자신을 피곤하게 해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민감한 사람들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자주, 또 과하게 인식한다.

이 기질을 긍정적으로 발휘하면 무기가 되지만, 자극에 휩쓸리게 되면 마음의 병이 된다. 문자에 찍힌 점 하나와 이모티콘 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왜 자꾸 걱정하게 되는 걸까? 원래 예민한 성격은 바꿀 수 없나?

오랜 기간 이런 '매우 예민함'을 연구한 전문가가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이자 우울증 전문가로 꼽히는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자살자의 사망원인분석 및 유가족의 심리지원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2014년 설립했다.

그는 최근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그가 그간의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각종 사례가 실려 있다.

코로나19로 예민함과 우울감이 한층 깊어진 시대에 꼭 필요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9월 24일 전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BBC 코리아 독자들의 궁금한 질문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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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나타나는 '매우 예민함'

"저는 이 책을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정말 예민하고 우울한 사람의 입장에 서서 써보자' 그리고 '예민함과 예리함의 작은 차이라도 알려주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썼는데 놀랄 정도로 반응이 좋아요. 위로하는 책이 아니고 정신적인 문제를 짚은 건데 (반응을 보니) 정곡을 짚었다 싶었어요."

전홍진 교수는 자신의 첫 책이 사람들의 공감을 많이 얻어 놀랍고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만큼 '예민함'과 '마음에 병'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그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동안 만난 환자들에게서 '예민함'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울증 진단 결과가 나와도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예민한 것 같다'라는 말에는 수긍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오는지 계속 고민을 했어요. 제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유명한 사람들을 건강 검진 때 많이 봐요. 그런데 이들도 성향이 아주 예민해요. 결과적으로 둘 다 예민한데 누구는 병으로 고생하고 누구는 성공하는지 궁금해져서 연구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죠."

전 교수는 2012~2014년 하버드대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한국과 미국 우울증 환자들의 증상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그 결과, 한국 사람들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형태의 우울증은 감정을 잘 못 느끼면서 무척 예민한 특징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몸으로 느껴요, 몸으로. 여기저기 아프고 팔다리가 아프고 숨이 답답하고 피곤한데 각종 검사를 해보면 문제가 없다고 나와요. 실제 자신의 기분, 그러니까 예민해서 긴장하고 불안해서 생긴 건데, 병원을 돌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죠. 우울하고 예민해져서 몸이 아프고 결국 대인관계와 일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전 교수는 이런 한국인의 특징을 문화에서 찾았다. 서구보다 감정을 억누르고, 드러내지 않는 환경이 예민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했다.

중국과 대만 출판업계에서도 그의 책에 관심을 보여, 곧 책의 번역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예민함은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

전홍진 교수는 한국인에 맞춰 '매우 예민함' 평가 문항을 만들었다. 총 28문항 중 7개 이상이면 매우 예민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문항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한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 등이 있다. 이 문항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에 실려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예민함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성공의 에너지가 된다고 말한다. 그의 책에 따르면 노력을 통해 항상성을 잘 유지하면 예민함은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통찰을 얻게 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게 해준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잘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등 인간관계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전 교수는 예민함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면 온앤오프(on and off)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민함이 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발휘되게 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끄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를 잘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예민성을 조절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런 분들 보면 예민해지거나 피곤해질 것 같을 때 하는 행동들이 있어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도 하죠. 골프나 등산을 한다든가 자신이 집중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걸 해요. 이렇게 마음의 평정심을 찾을 수 있는 것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해요. 만약 없다면 그걸 지금부터라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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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안전기지를 찾으면 도움이 된다'

'나만의 안전기지 찾기'

그는 주변에 자신에게 안정을 주는 사람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안전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에너지가 소진되기 전에 충전해야 한다. 예민해지는 상황이 많아질수록 안전기지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진다.

"남편(아내)이나 가족 등이 받아주고 안정되면 감정적으로 정말 좋은 겁니다. 같이 밥도 먹고 얘기하면 되잖아요. 그게 시큐어 베이스, 안전기지화거든요. 아기를 보면 엄마가 안아주고 밥도 주고 하면서 안정감을 느끼잖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안전기지가 필요해요. 안전기지는 애완동물일 수도, 운동일 수도 있고 취미일 수도 있어요. 최근에 예민한 일이 너무 많았다고 하면 찾을 수 있는 안전기지를 중간중간 많이 만들어놔야 합니다."

전 교수의 책에서 예민함을 줄이기 위해 온전히 쉬는 방법도 소개한다. 신체 반응을 살피면 도움이 된다. "생각이 단순해지고 몸의 근육이 이완되며 심장이 안정되고 호흡이 편안해지는지 파악"해보면 좋다고 한다.

대체로 자신의 업무와는 다른 일이 도움이 된다. 책에서 그는 "예를 들어 가정주부라면 집 안에서의 일이 아닌 것이 좋고, 회사원이면 본인 업무와 유사한 일이 아닌 것이 좋다. 뇌 가운데서 쓰지 않는 뇌, 근육 중에서는 쓰지 않는 근육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예민한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세세한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다 보니 오해를 하기도 하고 상처도 잘 받는다. 물론 예민함을 세심함으로 다듬으면 사람들을 이해하는 힘이 된다. 그러려면 인간관계에서도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도록 온앤오프를 잘해야 한다.

"그런 사람(예민함을 잘 다스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투, 혹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등을 신경 안 써요. 예민한 분들의 특징이 사람들이 말투나 표정 이런 거를 자기하고 결부시켜요. '이 사람이 왜 이러지, 날 싫어하나, 불만 있나...' 그런 질문엔 답이 없어요. 정확하지도 않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는 거예요."

'더욱 예민해지는' 코로나19 시대...대처법은?

요즘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지난 8월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서적으로 지치고 고갈됨을 느낀다'(39.3%), '실제 우울감을 느낀다'(38.4%)고 응답한 이들은 각각 40%에 가까운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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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홍진 교수 역시 코로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자주 본다. 그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갇힌 공간에 있고 삶의 패턴이 바뀌면서 생기는 답답함 등을 원인으로 봤다. 코로나19 자체 보다는 특히 원래 예민하고 우울했던 사람들이 코로나 19에 영향을 더 받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사람의 몸이라는 게 잠을 자고 아침, 점심, 저녁이 일정하게 돌아가야 우리 뇌가 기분을 잘 유지를 하게 돼요. 리듬이 맞춰지지 않으면 계속 우울해지고 불안해져요. 코로나 때문에 더 그럴 텐데 일단 일어나는 시간을 딱 정하고 아침에 빛을 쬐고 각성시키는 걸 한번 해보세요. 그것만 해도 굉장히 많이 변화해요."

예민한 이들의 '문제'보다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전 교수는 자신의 책을 특히 청소년과 대학교 초년생 등 젊은 세대들에게 추천한다.

"취업 문제도 있고, 코로나도 있고 시대가 그렇다 보니 요즘 젊은 세대는 더 걱정이 많은 것 같아요.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있는지 보는 게 중요해요. 불안감을 부추기면 안 돼요. 자신의 예민함을 무기로 삼을 수 있도록 자기에 대한 생각, 앞으로 연륜이 있을 때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집중해보세요"

그는 여러 연구와 더불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 대한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책 나눔을 할 예정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학생분들이 사회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요. 자신을 좀 알게 되고 또 다른 분들한테 도움을 주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작은 변화가 큰 변화로 이어지거든요. 세상과의 소통이 더욱 어려워지는 이 시대 제 글이 그렇게 활용되면 좋겠어요"

Q&A: BBC 코리아 독자가 묻고, 전홍진 교수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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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진 교수

Q. 학생입니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오래 들으니 친구들을 못 만나서 우울하고 집중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홍진(이하 전): 저도 그 부분이 걱정이에요. 학교에서 배우는 게 지식만 있는 게 아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잖아요. 이게 사람의 굉장히 중요한 인생의 근간이 되거든요. 근데 인터넷으로 강의만 들어선 안돼요.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강의 듣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하고 강의만 듣지 않고, 메신저 등으로 같이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보내고 서로 소통하는 등 그런 교류가 있어야 좋아요. 강의만 듣고 수업에만 집중하는 건 교육의 반의반도 안돼요. 물론 공부하느라 바쁘겠지만, 우선 우울감을 없애려면 같은 반 친구들과 소속감을 느껴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Q. 지나가다가 마스크를 안쓴 사람을 보면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시대 분노조절 방법이 있나요?

전: 그건 예민한 거하고는 다른 얘긴데요. 내가 화가 나는 거는 대체로 자신하고도 관련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나랑 관련이 있습니다. 화가 나는 상황을 보면 자신을 알 수 있다고 해요.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을 알 수 있는 것처럼요. 화가 난다는 건 나의 답답한 심리와 연관이 있어요. '왜 저 사람만 벗어, 나도 벗고 싶은데'라는 것이죠. 그 사람들한테 화를 내거나 내 에너지를 깎기보다는 '내가 코로나19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이렇게 됐구나'하며 자신을 보듬어주시고 다른 쪽으로 푸시기를 추천해요.

Q. 나의 예민함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주나요?

전: 영향이 있어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부모가 예민하면 아이도 예민한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예민한 게 나쁜 건 아니에요. 예민하면 공부도 잘해요. 이게 선을 넘으면 안 돼요. 아이가 예민해서 너무 심해서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니라면 괜찮고요. 눈 맞춤을 많이 해주고 아이를 자주 안아주고 행동 패턴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면 제일 좋아요. 애가 예민하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Q. 우울증 때문에 신경정신과를 찾았었는데, 의사 선생님의 딱딱한 태도나 무신경한 태도에 더 예민해지거나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 의사들마다 환자를 대하는 방식이 다른데 불친절하다기보다는 환자마다 맞는 선생님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이런 예민한 우울증이 있는 분들은 대게 친절하고 친근한 분들이 좋아요. 만약 강박증이 있는 환자는 딱 강하게 잡아주는 선생님이 맞을 수도 있고요. 자기와 맞는 선생님들을 찾아가면서 진료를 받아보면 어떨까요.

Q. 저는 개복치 멘탈(*너무 사소한 이유로도 죽는 물고기. 비슷한 말로는 유리, 순두부, 크리스탈 멘탈)때문에 고민입니다. 사람들의 한마디, 행동들이 너무 신경이 쓰여요. 강철멘탈로 거듭나는 방법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은 자기 생각만큼 그렇게 본인과 관련이 있지 않아요. 명확하지 않은 이상 자신과 연관짓는게 멘탈을 깎아먹죠. 말 한마디한마디 이런 거를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거죠. 오히려 만났을 때 친해지는 느낌과 감정의 교류. 그게 더 중요해요.

Q. 여기저기 지쳐서 인간관계를 잠시 차단하고 시골 같은 곳에 가는 건 도움이 될까요?

전: 그건 전혀 도움이 안돼요. 이런 예민한 분들이 시골에 가면 어떻게 되냐면 대인관계가 단절될 거 아니에요. 그럼 예전에 자기 힘들었던 일을 자꾸 회상을 하게 돼요. 그니까 몸은 시골로 갔는데 오히려 10년 전, 20년 전 옛날에 있었던 일들이 조용하면 생각이 더 나요. 그래서 힘들어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어요. 시골에 가서 거기서 재밌게 지내고 전원생활하고 이러면 좋겠지만, 잘 안된다고 봐요. 도시에서보다 더 강철멘탈이어야 돼요.

질문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