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처벌법으로 제2의 김태현 막을 수 있을까?

  • 김효정
  • BBC 코리아
스토킹은 피해자의 고통이 상당한데도 범죄로 이어지지 않으면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건1. 지난 7월 제주도에서 헤어진 여성 A씨를 스토킹하던 남성이 여성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앞서 A씨는 가해자를 신고하고 동시에 경찰에게 신변 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피해를 막을 순 없었고 결국 아들을 잃다.

사건2. 올해 초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도 스토킹으로 시작됐다. 피의자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 B씨가 연락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스토킹을 하다 집까지 찾아가 여동생과 어머니, B씨를 차례로 살해했다.

사건3. 2019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난 방화·살인 사건, 일명 ‘안인득 사건’ 뒤에도 스토킹 범죄가 있었다. 안인득에게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 C씨는 안인득의 스토킹에 시달리다 못해 집 앞에 CCTV를 설치하기도 했다. 안인득을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실제 상해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을 접수하는 것조차 반려당하고 한 달 후 목숨을 잃었다.

스토킹과 관련한 폭력 범죄가 연이어 알려지면서 초기 단계부터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토킹은 피해자의 고통이 상당한데도 범죄로 이어지지 않으면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스토킹 처벌 강화 요구가 지속되자 국회에서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스토킹처벌법)'이 통과돼 오는 10월 2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999년 15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뒤 무려 22년만에 처음 시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스토킹 행위에 대한 정의와 피해자 보호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토킹처벌법…왜 통과 늦었나?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 첫 발의가 됐지만, 계속해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스토킹은 사적 애정표현이나 구애와 구분하기 어려워 독립 법률 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이에 스토킹 피해를 봐도 가해자를 형사 처벌할 근거가 없어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경범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제3조 제1항 제41호)에 따라 10만원 이하 벌금, 구류, 과료 등의 형식으로 처벌됐다.

범칙금 10만원은 노상방뇨와 구걸행위 범칙금과 같은 수준이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노원구 세 모녀’를 잔혹하게 연쇄 살해한 피의자 김태현이 지난 4월 9일 서울 도봉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며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경범죄로 치부되던 스토킹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범죄의 양상으로 치닫자, 우리 사회 전역에서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신고 건수도 늘어났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4515건으로, 2018년 2772건보다 1.5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제 처벌은 미미했다.

지난해 경찰이 접수한 스토킹 범죄 신고 중 처벌에 이른 건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스토킹으로 처벌받은 건수는 총 488건뿐이다.

앞으로 무엇이 바뀌나?

법 마련 목소리가 높아지자 국회는 지난 3월 24일 '스토킹처벌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통과된 법안은 스토킹 행위를 '형사적 처벌 대상'인 범죄로 규정했다.

여기서 '스토킹'은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주거지 등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통신매체를 이용해 연락하기 등을 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로 정의됐다.

피해자는 경찰에 스마트워치 또는 주거지 근처 CCTV 설치를 요청하는 등 즉각적인 신변보호조치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스토킹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면 스토킹 가해자에 대해 접근금지가처분 등의 법적 조치도 가능해진다.

처벌도 커진다.

앞으로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흉기 같은 위험한 물건 이용 시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현실 담지 못한 '스토킹 처벌법' 비판

하지만 스토킹 처벌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여전하다.

우선 스토킹 법에는 피해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알리고 처벌을 원해야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있다.

그런데 친밀한 관계에서의 스토킹은 피해자가 신고 자체가 쉽지 않다.

협박이나 이후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고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스토킹 범죄 또한 성별 권력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형사전문변호사인 법률사무소 지담의 최지연 변호사는 BBC 코리아에 "법안에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의사를 강요한다던가 보복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염려된다"고 말했다.

법률안에 따르면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질 때만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 변호사는 스토킹이라고 정의하는 범위가 한정적이라고 평했다.

그는 "스토킹 행위를 '지속되고 반복되는 경우'로 봤는데 이 자체가 모호하기도 하며, 일회성이라도 피해가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신림동 원룸 강간 미수 사건 같은 경우도 일회성이긴 해도 당사자에게는 큰 불안을 주고 공포심을 주는 행위였다"며 피해가 심하면 횟수 여부를 떠나서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중심의 보호장치 필요

사진 출처, Davies Surya/BBC Indonesia

사진 설명,

온라인 스토킹은 개인정보 유포, 당사자 사칭, 허위정보 유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할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스토킹 처벌법은 전통적 유형의 스토킹 외에도 시대 변화를 반영해 일부 온라인 스토킹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다만 피해자가 원치 않는 내용의 메시지나, 사진, 영상 등을 당사자와 가족에게 전송하는 행위 정도만 온라인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해자가 SNS 등에 올라온 개인정보와 이미지를 조작해 퍼뜨리는 행위 등은 스토킹 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도쿄올림픽 4강의 주역인 여자 배구 국가대표 김희진 선수가 본 피해가 여기에 속하는 유형이다.

최근 김 선수가 수년간 스토킹과 협박에 시달려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SNS 계정을 사칭해 김 선수 지인들에게 접근하기도 하고 조작한 이미지 유포 등을 일삼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유형은 직접적인 협박이나 강요로 포함이 되지 않기 때문에 '스토킹 처벌법'의 법망을 빠져나간다.

온라인 스토킹은 개인정보 유포, 당사자 사칭, 허위정보 유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할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경이관계교육연구소 손경이 소장은 "온라인 스토킹의 경우 퍼가기 등으로 피해 범위가 크게 증폭된다"라며 "이런 부분을 인지해서 스토킹 피해의 범위를 확장시켜야 하고 가해자가 자신이 퍼트린 게시물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토킹 처벌법'에 피해자 보호 부분이 빠진 부분도 사각지대로 꼽힌다.

가해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중심의 보호 장치가 있어야 실효성을 갖출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손 소장은 이와 관련해 피해자가 신고가 가능한 상황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는 자존감이 떨어져 있고 심리적으로 약해져 있고 경제력도 낮을 가능성이 높다"며 "피해자가 고소 단계 전부터 심리적으로 지원받고 회복 받으며, 수사 단계에서도 성 인지 감수성을 갖춘 수사관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장치들이 마련돼야 신고와 처벌이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